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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말할 사람(5)

Erblinde schon heute; auch die Ewigkeit steht voller Augen ㅡ 오늘 부터 눈이 멀어라; 영원조차도 눈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각의 상실도 여전히 보는 한 방식이다. 눈에 대한 집착은 가시적인 것과 다른 것을 지시한다. Unverhü̈llt an den Toren des Traumes streitet ein einsames Aug. Er wird noch ein Aug sein, ein fremdes, neben dem unsern : stumm unter steinernem Lid. O dieses trunkene Aug, das hier umherirrt wie wir und uns zuweilen staunend in eins schaut. Erä̈ug..

블랑쇼 2023.04.20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4)

nirgends fragt es nach dir. (Engführung / Strette)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도 너를 찾지 않는다. 바깥 : 그곳에 눈들이 도달하고 ㅡ 존재와 떨어진 눈들, 우리가 고독하고 익명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눈들 : Das umhergestossene Immer - Licht, lehmgelb, hinter Planetenhäuptern. Erfundene Blicke, Seh - narben, ins Raumschiff gekerbt, betteln um Erden ㅡ Münder (in Atemwende / Renverse de Souffle) 그치지 않는 빛, 노란 진흙 이리 저리로 요동치는 중심 행성들 뒤에 보기 위해 발명된, 상처들 시선들 우주선 안에 깊은 상처를 ..

블랑쇼 2023.04.14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3)

zur Blindheit überㅡ redete Augen (Tübingen Jänner) Augen weitblind, Augen im Sterbegeklüft, Augen Augen: (Schneebett) 따라서 봄은 (아마도) 항상 운동과,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 마치 봐야 할 것 너머를 보는 눈들의 부름으로 향하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 세계에 눈먼 눈들, 말은 눈들이 멀 정도로 세계에 잠기고, 눈들은 일련의 죽어김의 균열 안에서 바라본다 (아니면 그 안에 자신들의 자리를 가진다). 세계에 눈먼 눈, 죽음의 틈들 속에 눈들 눈들 눈들 더 이상 읽지 마라 ㅡ 보라 ! 더 이상 보자 마라 ㅡ 가라 ! 목적 없는 운동. 항상 지난 시간 Geh, dein Stunde hat keine Schweste..

블랑쇼 2023.04.12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2)

Mit der untrüglichen Spur (속이지 않는 흔적을 가진) ... in der Dünung wandernder Worte (방랑하는 말들의 파랑 안에서) Gras, auseinandergeschrieben (풀, 서로의 바깥에 놓인 글쓰기) Lies nicht mehr ㅡ schau ! Schau nicht mehe ㅡ geh ! (더 이상 읽지 미라 ㅡ 보라 ! 더 이상 보지 마라 ㅡ 가라!) 이 언어는 어디로 향하는가? Sprachgitter : 말하기는 이 창살grille ㅡ 감옥의 창살 ㅡ 뒤에서 유지되는가? 그 창살을 통해서 바깥의 자유가 허락(거부)될 것이다 : 눈, 밤, 이름을 가진, 가지지 않은 장소. 이것이 아니면, 말하기는 암호를 풀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블랑쇼 2023.04.02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1)

ein ins Stumme entglittenes Ich un Moi échappé dans le mutisme 침묵 속으로 숨어든 나 Wieder Begegnungen mit vereinzelten Worten wie: Steinschlag, Hartgräse, Zeit A nouveau rencontres avec des mots isolés comme: chute de pierre, durs roseaux, temps 다시, 고립된 말들: 추락하는 돌, 억새풀, 시간 과의 만남 dass bewahrt sei ein durchs Dunkel getragenes Zeichen 여기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 언어의 극단적 긴장 속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 흩어진 것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단일성을 만들..

블랑쇼 2023.04.01

오늘 하루만이라도

2월 겨울, 스산한 겨울에 쓸쓸한 한국방문 중 동네 서점에서 시집을 한 권 샀다. 황동규의 . 시인은 표지글에 고 그런데 고 말한다. 시인은 면서, 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시인에게 오늘도 시를 쓰도록 이끈 것은 길을 밝히고 길을 내던 횃불이 아니라, 안개에 갇혀 출항 못하는 작은 배의 선장실에 어둠보다는 낫다며 선장이 켜놓고 내린 아주 희미한 이었다고 말한다. 불빛 한 점 한창때 그대의 시는 그대의 앞길 밝혀주던 횃불이었어.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없던 길 내고 그대를 가게 했지. 그대가 길이었어. 60년이 바람처럼 오고갔다. 이제 그대의 눈 어둑어둑, 도로 표지판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표지판들이 일 없인 들어오지 말하고 말리게끔 되었어. 이제 그대의 시는 안개에 갇혀 출항 못하는 조그만 배 ..

모네의 정원 2023.02.28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

- Anselm Kiefer pour Paul Celan 블랑쇼는 에서 파울 첼란의 시들을 읽는다. (이 글은 안에 실려있다.) (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p. 71) ....qui a besoin que nous manquions à nous-même pour passe la ligne que nous n'atteindrons pas. 도달과 기다림 사이, 도달함이 없는 기다림, 도달의 순간에도 여전한 기다림, 이 죽음의 불가능성, 블랑쇼 사유의 주요 모티브. 이 자기에서의 결핍, nous manquions à nous-mêmes, 세계의 결핍처럼, "le monde manquait" 모든 것의 결핍, 그리움, 우리는 세계 없이 존재한다. 블랑쇼는

블랑쇼 2023.01.21

재난의 글쓰기-에릭 호프만

재난이란 개념이 장르로서 종말론적인 문학과 애가(예레미아)의 전통을 상기시킨다면, 반면 이것들은 블랑쇼가 『재난의 글쓰기』 안에서 사용하는 재난의 개념 속으로 전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블랑쇼는 특히 이 개념을 단편들로 구성된 『재난의 글쓰기』(1980) 안에서 전개했다. 이 책은 그보다 7년 앞서 나온 『저 너머로 가는 발걸음』의 2부처럼 형성되었다. 현재 지적인 영역 안에서 이 개념은 수용소와 인종말살에 대한 증언의 텍스트들을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재난은 역사의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그 자체를 재난이 그 자체로 드러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생존자의 글쓰기 이상으로. 재난은 돌아온 자의 진술의 장소이다. 사라진 자들의 목소리를 체화하는 유령의 언어. 재난은 묘지도 없..

블랑쇼 2022.08.01

재난의 글쓰기(21)

◆ 책임responsabilité : 이 흔한 말, 가장 쉬운 도덕(정치 도덕)이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이 개념을, 레비나스가 새롭게 하고, 타자의 철학(여러 가지 면에서 여전히 영원한 철학*으로 남아있는 철학)으로까지 (모든 의미를 너머서) 그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이해해 봐야 한다. 책임있는responsable : 일반적으로 이 말은 보통 그리고 부르주와적으로 성숙한 인간, 척도를 가지고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계산하고 결정하는 명석하고 의식있는 사람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더 이상 의식에 속하지 않고, 반성의 일이 아니고, 바깥에서 우리에게 부여되는 의무도 아닌 책임ㅡ상호성 없는 타인에 대한, 모두에 대한 나의 책임 ㅡ이 있다.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은 지위의 변화, 시간의 변화, 어쩌면 언어의 변..

블랑쇼 2022.07.31

오스티나토

Sans cesse de là-bas où le je n'est plus qu'un il douloureusement proche, douloureusement étranger, tantôt surgi d'ailleurs et de nulle part, tantôt né sur place et comme déchargé par les mots de tout le poids de la mémoire qui subor- donne la vérité d'une vie à la vérité des faits. L.R. des Forêts, Ostinato Ostinato oder Rhythmische Ordnung, 1957 끊임없이 저기에서 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그 나는 아프게 가깝고 아프게 낯설다. ..

모네의 정원 202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