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쇼

재난의 글쓰기-에릭 호프만

aurorepark 2022. 8. 1. 14:10

재난이란 개념이 장르로서 종말론적인 문학과 애가(예레미아)의 전통을 상기시킨다면, 반면 이것들은 블랑쇼가 재난의 글쓰기안에서 사용하는 재난의 개념 속으로 전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블랑쇼는 특히 이 개념을 단편들로 구성된 재난의 글쓰기(1980) 안에서 전개했다. 이 책은 그보다 7년 앞서 나온 저 너머로 가는 발걸음2부처럼 형성되었다. 현재 지적인 영역 안에서 이 개념은 수용소와 인종말살에 대한 증언의 텍스트들을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재난은 역사의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그 자체를 재난이 그 자체로 드러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생존자의 글쓰기 이상으로. 재난은 돌아온 자의 진술의 장소이다. 사라진 자들의 목소리를 체화하는 유령의 언어. 재난은 묘지도 없이 사라진 자들의 유해를 마치 지하납골당에 묻는 글쓰기와 같다. 증언과 유언의 문학. 유언은 증언이기에.

 

재난은 아주 복합적인 사유의 운동이다. 왜냐하면 자주 블랑쇼의 글들이 그런 것처럼, 개념들은 역설, 아포리아 속에서 전개된다. 우선 재난은 이미 일어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접한 것인 한에서, 우리의 시간의 표상에 대한 도전이다. 따라서 재난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확한 공간도 시간도 없다. 그러나 현재는 재난이 돌아오는 시간이며, 시간 그 자체가 돌아올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재난에 의해 산산 조각난 것으로서. 따라서 세상의 종말은 항상 도래하는 것이면서 항상 이미일어난 것이다.

 

재난의 글쓰기는 단편에 특권을 부여하는 진정한 시학을 연출한다. 마치 프리모 레비가 그의 책 만일 이것이 사람이라면(이것이 인간인가)의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단편은 난파, 파편, 조각을 모방한다. 단편은 모든 시간순서적인 의지, 모음을 벗어난다. 단편은 모든 서사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이런 점에서 샤을로트 델보의 작품은 특히 의미가 있다. 그녀의 작품은 시적이고 단편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공포를 건너온, 침묵 혹은 그 반대와 직면한, 그래서 마치 무한한 더듬거림과 같은 언어의 전복을 표현한다. 모든 사라짐에, 모든 유해에 익명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목소리를 주는 것은 재난의 글쓰기의 일이 될 것이다.

 

블랑쇼의 재난은 철학적으로 레비나스가 존재와 다르게에서 전개한 수동성의 개념과의 근접성 안에 기입된다. 재난이 모든 경험의 형태들을 피하는 한에서 그것은 블랑쇼의 신조어 따름subissement과 같다.

 

Référence électronique

Éric Hoppenot, « L’écriture du désastre », Témoigner. Entre histoire et mémoire [En ligne], 118 | 2014, mis en ligne le 01 octobre 2015, consulté le 25 juillet 2022. URL : http://journals.openedition.org/temoigner/1263 ; DOI : https://doi.org/10.4000/temoigner.1263

 

'블랑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1)  (0) 2023.04.01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  (0) 2023.01.21
재난의 글쓰기(21)  (0) 2022.07.31
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0) 2022.03.22
재난의 글쓰기(20)  (0)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