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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그 안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침묵하지 않는다.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의 선물처럼, 메마른 말들 위에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의 눈물, 아이의 모든 강렬한 원시성을 주며 떨어진다.” 루이르네 데 포레의 『오스티나토』 중에서 세이렌들의 노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자 하는 희망으로, 오디세우스처럼 밀랍으로 귀를 막지도, 그런데 오디세우스와 달리 몸을 돛대에 묶지도 않은 채, 세이렌들의 노래에 끌려 결국 도달한 그곳에서 시인이, 블랑쇼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이렌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을까? 세이렌들의 불완전한 노래는 결국 사라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저 너머로 그들을 이끌었는가? 음악은 그 기원에서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완전하게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

블랑쇼 2022.03.22

재난의 글쓰기(20)

◆ 수동성과 질문 : 수동성은 아마도 질문의 끝에 놓일 것이다. 그런데 수동성은 여전히 질문에 속하는가? 재난은 질문될 수 있는가? 어디서 대답, 질문, 긍정, 부정이 끼어들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예언이나 금지의 표시와 같은 모든 표시를 회피하는 말하기는 어디에 있는가? ◆ 레비나스가 언어를 접촉과 같은 것으로 정의했을 때, 그는 언어를 직접성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심각한 결과를 동반한다: 왜냐하면 직접성은 절대적인 현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흔들고 모든 것을 뒤집는다. 접근, 부재, 심지어 요구 없는 무한. 그런데 신비한 일치의 유괴. 즉각성은 모든 매개와의 간격일 뿐 아니라, 직접성은 더 이상 말해질 수 없는 무한한 현전이다. 왜냐하면 관계 그 자체는ㅡ그것이 윤리적이든 존재론..

블랑쇼 2021.04.09

달리기, 기욤 르 블랑

역자 후기: 하찮음이 진지함이 된다면 우리에게는 『안과 밖: 외국인의 조건』으로 처음 소개 되었던 일상의 철학자, 깡귀렘과 푸코의 유산 아래서 일상의 삶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들, 그 삶들 안에 각인된 상처받을 수 있음을 질문하는 철학자, 기욤 르 블랑은 이번에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철학에서 제외된 일상의 삶들 안에 각인된 ‘하찮음’을 질문한다. 누가 어떤 것은 미리 사유가 될 자격이 있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고 선언할까? 1년에 한 번은 마라톤에 참여하는 주자이기도 한 철학자-주자인 르 블랑은 이 책을 통해 오늘날,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 그 세계를 따라잡기 위해 뛰는 우리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쫓아서 달리는가? 매일 아침 직장으로 학..

모네의 정원 2021.01.14

재난의 글쓰기(19)

오랬동안 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 내가 나를 기진맥진 하게 하는 타자의 독촉, 혹은 명령 안에서 타자를 환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어설프게 유일한 허약함(불행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찮고 미친 부분)에 의해 나는 부패하고 부식한, 전적으로 소외된 나의 자아와 더불어 (세기 초에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발견한 곳은 로마 성벽 아래 나병환자들과 거지들 가운데에서다)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오라고 불려졌기 때문이다. (42) ◆ 타자가 먼 자le lointain(절대적으로 먼 자로부터 오는, 그리고 그의 흔적ㅡ영원의 흔적,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흔적ㅡ을 지니는 얼굴)인 한에서, 부재의 흔적 안에서 얼굴의 타자가 나에게 명령하는 유일한 관계는 존재 너머au-delà de l'être, 즉 자기 자신 ..

블랑쇼 2020.11.10

랑시에르와의 대화ㅡ 피곤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

자크 랑시에르 - 근사치의 철학 “1840년 장인들은 철학을 여는 한 질문을 제기했다. 누가 생각할 권리를 가지는가?” 자크 랑시에르의 이 대담집은 30년 간의 대화들ㅡ철학, 문학, 미학, 예술, 영화, 정치, 시사 등에 대한 대화들ㅡ을 모은 그의 반성과 저항의 증거들이다. 자크 랑시에르의 말과 사유는 토론과 대화로부터 자연스럽게 솟아나온 이념들로 자라난다. 그의 생각들은 부서지고, 파편화된 형태를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렇게 부서지고 흩어진 생각들을 한 체계,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분석의 명시적 체계로 재구성하는 것은 여기서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의 내기처럼 보인다. "상실도 우리에게 속한다"라는 릴케의 이 말은, 자크 랑시에르가 즐겨쓰는 말로, 문학을 읽는 자신의 방식이..

랑시에르 2020.03.22

저 너머로의 발걸음-역자해제

죽음을 서둘러서 무덤에 묻지 않기 위해 1. 블랑쇼의 『저 너머로의 발걸음』Le pas au-delà(1973)은 소설도, 이야기도, 문학적 혹은 철학적 에세이도 아닌ㅡ이 모두인ㅡ이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단편적인 것들의 모음이다. 그의 최초의 진정한 "단편적인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의 읽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단편적인 것들, 부서진 것들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블랑쇼의 글쓰기의 리듬을 배반하게 된다. 단편적인 것들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미궁'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블랑쇼 읽기의 가장 정직한 순간이다. '넘어감이 없이 넘어가는 이 발걸음le pas au-delà'은 "미궁과 같은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미궁처럼 처신하고, 그 자체 미궁의 구..

블랑쇼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