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der untrüglichen Spur
(속이지 않는 흔적을 가진)
... in der Dünung
wandernder Worte
(방랑하는 말들의 파랑 안에서)
Gras, auseinandergeschrieben
(풀, 서로의 바깥에 놓인 글쓰기)
Lies nicht mehr ㅡ schau !
Schau nicht mehe ㅡ geh !
(더 이상 읽지 미라 ㅡ 보라 !
더 이상 보지 마라 ㅡ 가라!)
이 언어는 어디로 향하는가? Sprachgitter : 말하기는 이 창살grille ㅡ 감옥의 창살 ㅡ 뒤에서 유지되는가? 그 창살을 통해서 바깥의 자유가 허락(거부)될 것이다 : 눈, 밤, 이름을 가진, 가지지 않은 장소. 이것이 아니면, 말하기는 암호를 풀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만드는 격자grille라고 믿는 것인가? 그래서 말하기는 여전히 의미나 진리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환상에, 저기, 속이지 않는 흔적을 가진 경치 안에 갇히는가? 그러나 글쓰기가 일종의 어떤 것 아래에서, 이러 저런 것 안에 응축된 어떤 것의 바깥에서 읽히듯이 ㅡ 그 어떤 것을 지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어딘가로 가는 방랑하는 말들의 파랑波浪 안에서 그것이 드러나기 위해서 ㅡ 이 바깥도 여전히 글쓰기, 연결 없는 글쓰기, 항상 이미 자기 자신 바깥의 글쓰기처럼 읽히지 않는가? 풀, 서로의 바깥에 놓인 글쓰기. 어쩌면 글쓰기는 하나의 자구책recours ㅡ 그것은 자구책, 호소/부름appel인가? ㅡ 언어의 망réseau du langage(눈, 창살 사이의 둥근 눈)을 넘어서, 보다 넓은 시선의 기다림에, 봄의 가능성을 기다리면서, 관점/봄/시각을 의미하는 말들 그 자체 없이 볼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읽지 마라 ㅡ 보라!!
더 이상 보지 마라 ㅡ 가라! (p. 75)
ㅡ 두 번째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조각의 시구들은 모두 시집 SPRACHGITTER/GRILLE DE PAROLE/말의 창살/격자 안에 'ENGFÜHRUNG/STRETTE/스트레타'에서 따온 시구들이다. 나머지 하나는시집, SCHWELLE ZU SCHWELLE/DE SEUIL EN SEUIL/문턱에서 문턱으로에 실린 'SPRICH AUCH DU/TOI AUSSI PARLE/너도 말해'에서 온 시구다.
ㅡ Sprachgitter/Grille de parole: Gitter/Grille는 수녀원에서 수녀들과 방문객들 사이에 놓인 창살처럼 말들을 분리하는 창살이기도, 암호문자를 해독하는 격자모양의 판지일 수도 있다. 말들을 분리하고 해독하는 창살은 또한 크리스탈과 같은 결정체를 구성하는 망Réseau을 의미하기도 한다.
ㅡ 글쓰기, 시인의 시는 블랑쇼에게 말들을 가두고 해석하는 언어의 망 너머, 그 바깥에서, 다만 어딘가로 향하는 방랑하는 말들의 파랑 속에서 그 뭐라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글쓰기는 항상 어떤 관점을 가진 말들 없이 볼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맡기는 것 ㅡ 더 이상 읽지 말고 보라! 더 이상 보지 말고 가라! ㅡ 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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