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겨울, 스산한 겨울에 쓸쓸한 한국방문 중 동네 서점에서 시집을 한 권 샀다.
황동규의 <오늘 하루만이라도>.
시인은 표지글에 <살면서 힘들었던 일들, 특히 이즈음 몸이 속을 바꾸며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일들을 시로 변형시켜 가지고 가고 싶다>고 그런데 <가지고 가다니, 어디로? 그런 생각은 지난날의 욕심이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못 가지고 가는 시를 쓰자>고 말한다. 시인은 <지난 몇 해 마지막 시집을 쓴다>면서, <유고집이 될 수도 있는 시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시인에게 오늘도 시를 쓰도록 이끈 것은 길을 밝히고 길을 내던 횃불이 아니라,
안개에 갇혀 출항 못하는 작은 배의 선장실에 어둠보다는 낫다며 선장이 켜놓고 내린 아주 희미한 <불빛 한 점>이었다고 말한다.
불빛 한 점
한창때 그대의 시는
그대의 앞길 밝혀주던 횃불이었어.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없던 길 내고
그대를 가게 했지. 그대가 길이었어.
60년이 바람처럼 오고갔다.
이제 그대의 눈 어둑어둑,
도로 표지판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표지판들이
일 없인 들어오지 말하고 말리게끔 되었어.
이제 그대의 시는 안개에 갇혀 출항 못하는
조그만 배 선장실의 불빛이 되었군.
그래도 어둠보단 낫다고 선장이 켜놓고 내린,
같이 발 묶인 그만그만한 배들을 내다보는 불빛.
어느 배에선가 나도! 하고 불이 하나 켜진다. 반갑다.
끄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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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는 읽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
당신의 시에 마지막 끝행에 줄을 긋는다.
나도! 나도!
당신의 시를 다시 만나서 나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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