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

오늘 하루만이라도

aurorepark 2023. 2. 28. 15:17

2월 겨울, 스산한 겨울에 쓸쓸한 한국방문 중 동네 서점에서 시집을 한 권 샀다. 

황동규의 <오늘 하루만이라도>. 

 

시인은 표지글에 <살면서 힘들었던 일들, 특히 이즈음 몸이 속을 바꾸며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일들을 시로 변형시켜 가지고 가고 싶다>고 그런데 <가지고 가다니, 어디로? 그런 생각은 지난날의 욕심이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못 가지고 가는 시를 쓰자>고 말한다. 시인은 <지난 몇 해 마지막 시집을 쓴다>면서, <유고집이 될 수도 있는 시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시인에게 오늘도 시를 쓰도록 이끈 것은 길을 밝히고 길을 내던 횃불이 아니라,

안개에 갇혀 출항 못하는 작은 배의 선장실에 어둠보다는 낫다며 선장이 켜놓고 내린 아주 희미한  <불빛 한 점>이었다고 말한다. 

 

 

불빛 한 점

 

한창때 그대의 시는

그대의 앞길 밝혀주던 횃불이었어.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없던 길 내고

그대를 가게 했지. 그대가 길이었어. 

 

60년이 바람처럼 오고갔다.

이제 그대의 눈 어둑어둑,

도로 표지판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표지판들이

일 없인 들어오지 말하고 말리게끔 되었어.

 

이제 그대의 시는 안개에 갇혀 출항 못하는

조그만 배 선장실의 불빛이 되었군.

그래도 어둠보단 낫다고 선장이 켜놓고 내린,

같이 발 묶인 그만그만한 배들을 내다보는 불빛.

어느 배에선가 나도! 하고 불이 하나 켜진다. 반갑다. 

끄지 마시라. 

 

*************

 

시인의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는 읽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

당신의 시에 마지막 끝행에 줄을 긋는다. 

나도! 나도! 

 

당신의 시를 다시 만나서 나도! 반갑습니다. 

 

 

 

'모네의 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자가 말한다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2) 2025.01.03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7) 2024.10.16
오스티나토  (0) 2022.03.22
달리기, 기욤 르 블랑  (0) 2021.01.14
랑시에르. 어림셈  (0) 2018.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