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쇼 53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1)

ein ins Stumme entglittenes Ich un Moi échappé dans le mutisme 침묵 속으로 숨어든 나 Wieder Begegnungen mit vereinzelten Worten wie: Steinschlag, Hartgräse, Zeit A nouveau rencontres avec des mots isolés comme: chute de pierre, durs roseaux, temps 다시, 고립된 말들: 추락하는 돌, 억새풀, 시간 과의 만남 dass bewahrt sei ein durchs Dunkel getragenes Zeichen 여기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 언어의 극단적 긴장 속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 흩어진 것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단일성을 만들..

블랑쇼 2023.04.01

마지막으로 말할 사람

- Anselm Kiefer pour Paul Celan 블랑쇼는 에서 파울 첼란의 시들을 읽는다. (이 글은 안에 실려있다.) (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p. 71) ....qui a besoin que nous manquions à nous-même pour passe la ligne que nous n'atteindrons pas. 도달과 기다림 사이, 도달함이 없는 기다림, 도달의 순간에도 여전한 기다림, 이 죽음의 불가능성, 블랑쇼 사유의 주요 모티브. 이 자기에서의 결핍, nous manquions à nous-mêmes, 세계의 결핍처럼, "le monde manquait" 모든 것의 결핍, 그리움, 우리는 세계 없이 존재한다. 블랑쇼는

블랑쇼 2023.01.21

재난의 글쓰기-에릭 호프만

재난이란 개념이 장르로서 종말론적인 문학과 애가(예레미아)의 전통을 상기시킨다면, 반면 이것들은 블랑쇼가 『재난의 글쓰기』 안에서 사용하는 재난의 개념 속으로 전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블랑쇼는 특히 이 개념을 단편들로 구성된 『재난의 글쓰기』(1980) 안에서 전개했다. 이 책은 그보다 7년 앞서 나온 『저 너머로 가는 발걸음』의 2부처럼 형성되었다. 현재 지적인 영역 안에서 이 개념은 수용소와 인종말살에 대한 증언의 텍스트들을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재난은 역사의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그 자체를 재난이 그 자체로 드러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생존자의 글쓰기 이상으로. 재난은 돌아온 자의 진술의 장소이다. 사라진 자들의 목소리를 체화하는 유령의 언어. 재난은 묘지도 없..

블랑쇼 2022.08.01

재난의 글쓰기(21)

◆ 책임responsabilité : 이 흔한 말, 가장 쉬운 도덕(정치 도덕)이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이 개념을, 레비나스가 새롭게 하고, 타자의 철학(여러 가지 면에서 여전히 영원한 철학*으로 남아있는 철학)으로까지 (모든 의미를 너머서) 그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이해해 봐야 한다. 책임있는responsable : 일반적으로 이 말은 보통 그리고 부르주와적으로 성숙한 인간, 척도를 가지고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계산하고 결정하는 명석하고 의식있는 사람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더 이상 의식에 속하지 않고, 반성의 일이 아니고, 바깥에서 우리에게 부여되는 의무도 아닌 책임ㅡ상호성 없는 타인에 대한, 모두에 대한 나의 책임 ㅡ이 있다.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은 지위의 변화, 시간의 변화, 어쩌면 언어의 변..

블랑쇼 2022.07.31

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그 안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침묵하지 않는다.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의 선물처럼, 메마른 말들 위에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의 눈물, 아이의 모든 강렬한 원시성을 주며 떨어진다.” 루이르네 데 포레의 『오스티나토』 중에서 세이렌들의 노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자 하는 희망으로, 오디세우스처럼 밀랍으로 귀를 막지도, 그런데 오디세우스와 달리 몸을 돛대에 묶지도 않은 채, 세이렌들의 노래에 끌려 결국 도달한 그곳에서 시인이, 블랑쇼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이렌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을까? 세이렌들의 불완전한 노래는 결국 사라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저 너머로 그들을 이끌었는가? 음악은 그 기원에서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완전하게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

블랑쇼 2022.03.22

재난의 글쓰기(20)

◆ 수동성과 질문 : 수동성은 아마도 질문의 끝에 놓일 것이다. 그런데 수동성은 여전히 질문에 속하는가? 재난은 질문될 수 있는가? 어디서 대답, 질문, 긍정, 부정이 끼어들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예언이나 금지의 표시와 같은 모든 표시를 회피하는 말하기는 어디에 있는가? ◆ 레비나스가 언어를 접촉과 같은 것으로 정의했을 때, 그는 언어를 직접성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심각한 결과를 동반한다: 왜냐하면 직접성은 절대적인 현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흔들고 모든 것을 뒤집는다. 접근, 부재, 심지어 요구 없는 무한. 그런데 신비한 일치의 유괴. 즉각성은 모든 매개와의 간격일 뿐 아니라, 직접성은 더 이상 말해질 수 없는 무한한 현전이다. 왜냐하면 관계 그 자체는ㅡ그것이 윤리적이든 존재론..

블랑쇼 2021.04.09

재난의 글쓰기(19)

오랬동안 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 내가 나를 기진맥진 하게 하는 타자의 독촉, 혹은 명령 안에서 타자를 환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어설프게 유일한 허약함(불행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찮고 미친 부분)에 의해 나는 부패하고 부식한, 전적으로 소외된 나의 자아와 더불어 (세기 초에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발견한 곳은 로마 성벽 아래 나병환자들과 거지들 가운데에서다)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오라고 불려졌기 때문이다. (42) ◆ 타자가 먼 자le lointain(절대적으로 먼 자로부터 오는, 그리고 그의 흔적ㅡ영원의 흔적,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흔적ㅡ을 지니는 얼굴)인 한에서, 부재의 흔적 안에서 얼굴의 타자가 나에게 명령하는 유일한 관계는 존재 너머au-delà de l'être, 즉 자기 자신 ..

블랑쇼 2020.11.10

저 너머로의 발걸음-역자해제

죽음을 서둘러서 무덤에 묻지 않기 위해 1. 블랑쇼의 『저 너머로의 발걸음』Le pas au-delà(1973)은 소설도, 이야기도, 문학적 혹은 철학적 에세이도 아닌ㅡ이 모두인ㅡ이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단편적인 것들의 모음이다. 그의 최초의 진정한 "단편적인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의 읽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단편적인 것들, 부서진 것들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블랑쇼의 글쓰기의 리듬을 배반하게 된다. 단편적인 것들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미궁'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블랑쇼 읽기의 가장 정직한 순간이다. '넘어감이 없이 넘어가는 이 발걸음le pas au-delà'은 "미궁과 같은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미궁처럼 처신하고, 그 자체 미궁의 구..

블랑쇼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