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의 모든 고통을 겪는다. 에크하르트는 그 이유를 설명했고 파스칼도 역시 "세기의 끝에서도 죽어가면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 그런데 고통을 겪는 자가 신이라면, 우리는 기독교의 역설, 왜 고통은 행복인가를 이해한다. 나는 지금 나의 비참에 대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연금술자이다. 이 비참을 금으로 만들 것이다. 연금술에는 심오한 하나의 직관이 있다: 모든 요소들의 동일함 L'identité de tous les éléments. 그런데 이것은 나의 철학 안에서, 나의 기독주의에서 설명되며, 고통은 기쁨이다. 나는 우리가 바닥에 역전의 원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삶은 추하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 것이다. 고통을 금으로 만드는 것 -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상이나 승화가 아니고, 실재의 접근에 의해, 주체성의 토대의 접근에 의해서 가능하다 (1946년 앙리의 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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