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한 학회에서 발표된 레비나스의 글 "철학과 각성(La Philosophie et l'éveil)"(Entre nous에 실려있음)은 다른 글1974년에 한 잡지에 실린 "후설로부터 의식에서 경계심으로(De la conscience à la veille à partir de Husserl)"(De Dieu qui vient à l'idée에 실려있음)은 특히 후설의 현상학의 초월론적 환원을 그 중심 주제로 다루는 글들이다. 이 글은 6개의 절로 나눠져 있다.
1. 지식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진리 안에서 명령하는 존재의 독립성 혹은 외재성, 그리고 이 외재성이 진리의 장소인 지식 안에서 내재화될 가능성은 사유와 존재의 일치가 일어나는 세계의 사실이다. 이 일치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의 신비로운 정합성이 아니며, 심리적 사실과 물리적, 공간적 사실 사이의 부조리한 동등성도 아니다. 그것은 지각의 사실이다: 세계 안에서 열린 것과 파악될 수 있는 것의, 주어진 것과 파악된 것 혹은 이해된 것의 본래적인 결합. 또한 지식과 존재의 이념들은 세계와 상관적이며 세계와 관계한다. 존재와 지식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세계로부터 사유하는 것이다. 또한 존재와 의식은 둘다 현전과 표상에, 다양한 측면들을 거쳐서 동일화하는 동일한것에, 혹은 동일자에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지각의 존재적 지혜 - 일상적인 삶의 지혜, 지각으로부터 나오는 과학에서 보편성을 보증하는 국가의 지혜이며, 진리와 세계의 지혜(sagesse de la vérité et du monde)이다.
- 외재성을 내재화할 가능성, 다시 말해 타자성을 자기화할 가능성 그 자체는 사유와 존재의 일치가 일어나는 세계의 사실이며 지작의 사실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외재성을 외재성으로,타자를 타자로 존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세계와 지각의 사실 밖에서, 국가의, 세계의 진리 밖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2. 철학은 존재적(ontique) 스타일이다. 그것이 비록 존재론적이고자 할지라도 우선 존재자(étant)에 의존한다. 존재자의 존재는 물론 "어떤 것(quelque chose) 이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있는 바의 것(ce qu'il est)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 동사의 진리와 그 진리가 자신을 현시하는 탈은폐를 말하고자 하는 시도는 철학자의 오해 혹은 가벼움도 아니며 그것의 결과도 아니다. 존재적 스타일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적 스타일을 일단의 언어의 논리로 환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은 칸트주의의 진리를 의미하는가? 다시 말해 건전한 사유는 어떤 방식으로도 소여, 존재의 표상, 존재의 현전, 세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불가능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다른 칸트주의의 기입(un autre registre kantisme), 즉 새로운 초월론적인 가상을 의미하는가?[...]
- "존재론은 근본적인가?"라는 글에서, 아니 그 이전에 이미 그의 초기의 글들에서 레비나스는 존재의 우선성과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차이에 반해서, 존재자의 우선성을 명백히한다. 그의 철학은 우선 우리가 칸트 이후로 이해하는 근-현대 철학의 주된 흐름에 반한 운동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보임은 레비나스가 <존재로부터 존재자로>에서 하이데거적인 철학의 분위기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면서, 그렇다고 이 요구가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복구의 몸짓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현대 철학의 초월론적 철학의 논리주의와 언어-구조주의에 반한 레비나스의 철학의 행보는 위에서 "존재적 스타일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적 스타일을 일단의 언어의 논리로 환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으로 제기된다. 그리고 그것은 칸트주의에 대한 새로운 기입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밝힌다. 현대철학의 존재론은 결국 새로운 초월론적인 가상이 아닌가?
3. 그런데 존재적 지식의 파악, 즉 과학적 지식의 보편적이고 소통가능하고 일관적인 결과들 옆에서 철학은 오늘날 모든 신용을 잃어버렸다. 이 신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철학들 사이의 불일치에 의해 잃어버린 것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그리고 후설의 <엄격한 학으로서 철학> 등은 모두 이 불일치를 한탄한다. 그런데 형이상학의 종말에 대한 주제 아래서, 철학의 이러한 가치저하는 오늘날 아마도 보다 명백하게 철학의 언어 안에 기입되어 철학을 지속시키는 의미에 반한 의식(la conscience du contresens)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세계의 이면에 의해 존재적 수준과 다른 것을 발결할 줄 모르는 형이상학적 사유들의 의미를 구체화한다. 이렇게 물러선 철학이 물밑에서 하는 작업은 파괴된 재료들, 이데올로기들의 징후적 의미작용에 대한 정신분석에 의해 지각도 과학도 아닌 형이상학의 언어를 탈구축(dé-contruire)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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