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d rien ne vient, il vient toujours du temps,
du temps
sans haut ni bas,
du temps
sur moi
avec moi
en moi
par moi
passant ses arches en moi qui me ronge et attends
H. Michaux, Passages
아무 것도
오지 않을 때, 그것은 항상 시간으로부터 온다,
시간으로부터,
위도 아래도
없이,
시간으로부터
나에게로
나와 더불어
내 안에서
나에 의해서
나를 갉아먹고 나를 기다리는 내 안의 시간의 저 먼 기억들을 거쳐서
*
시간의 잃어버림은 어떤 주체의 작업도 아니다. 후설의 현상학적 분석 - 언어를 남용하면서 - 이 시간의 길이를 회복하는 과거지향과 미래지향의 종합은 이미 나 없이 일어난다. 시간은 지나간다.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 그 가장 깊은 의미에서 수동적이라고 불리는 - 이 종합은 늙어감이다. 종합은 시간의 무게 아래에서 파열한다. 되돌릴 수 없게 현재로부터 자신을 떼어낸다. 다시 말해 표상으로부터 분리된다. 자기에 대한 의식에는 자기에 자기에 대한 현전은 더 이상 없다. 기억의 회복을 넘어서 늙어가는 것처럼, 시간 - 되돌아 옴이 없는 시간 - 은 통시적이며 나를 만진다. (존재와 다르게...p. 88)
**
율리시스의 여행이 아닌, 여행, 그의 시간이 아닌 시간, 유사함에서 동일함으로의 이행이 없는 시간, 늙어감의 수동성 안에 진정으로 새로움이 도래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여행이 아닌, 변형이 아닌, 회복이 아닌 여행 안에서만, 하나의 출발점으로부터 새로운 삶, 다른 삶의 가능성이 열린다. 통시적인 여행. 이 "움직이지 않는 것의 운동성"(53)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하다: 자기부터 다른 곳으로의 여행. 존재의 변형이 아닌, 존재의 운명의 실현이 아닌 곳에서만 진정한 이동이 가능하다. 레비나스가 가르쳐준 시간의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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