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의 핵심적인 용어들ㅡ예를 들어 레비나스의 타인 혹은 타자를 지시하는 '비가시성', '외국인'과 '상처받을 수 있음'ㅡ로부터 한 사회철학자가 구체적인 사회 정치적인 실천적 담론을 산출한다. 그의 철학의 바닥에는 "레비나스의 형이상학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숨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레비나스주의자라는 말은 아니다. 차라리 그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정치 철학으로 전개 시킨 데리다, 혹은 레비나스와 많은 면에서 공감하지만 그 근본성에 같지 않은 리쾨르 쪽에 더 가깝다. 더 가까이는 그 방법론에 있어서 깡귀렘과 푸코의 제자라고 불러여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사회 정치적인 입장은 쥬디트 버틀러와, 또 그녀가 나눠가지는 정신분석과 많은 것을 나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 철학에 사회 정치적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가장 최근의 그의 저서 Que faire de notre vulnérabilité, <'상처받을 수 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2011)라는 질문이 보여주듯이, 그의 관심은 형이상학적인 책임윤리의 토대로서의 "상처받을 수 있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고, 그것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레비나스의 유명한 "정치는 나중에!"라는 구호가 보여주듯이 그에게 정치, '말해진 것le dit'의 지위에 속하는 것은 그것에 '앞선 말하기le dire'로 항상 되돌려 보내진다. 그에게 제삼자의 문제가 부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의 관심은 보통 우리가 사회적 소외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2009년 그의 책 <사회적 비가성, L'invisibilité sociale>이 가장 일반적으로 보여주듯이, 사회적 배제, 차별에 의해 사회 안에서 보이지 않게되는 타자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임시고용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외국인, 동성애자 등등 분명 준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들, 유령들의 실재를 밝히는데 있다. 같은 주제의 맥락에서 2010년의 <안과 밖: 외국인의 조건, Dedans, dehors: La condition d'étranger>은 특히 '외국인'에 촛점을 맞춰서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국경에 놓인 외국인의 조건을 다룬다. 안과 밖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분이 생겨나는 것은 기욤 르 블랑에 의하면 '국가nation'라는 근대적 개념과 더불어 생겨나며, 외국인은 외국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물론 레비나스의 모든 인간의 본래적인 이방인적 조건과는 구분된다. 이런 점에서 르 블랑은 레비나스와 정반대로 접근한다고 말해도 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레비나스가 본래적인 인간의 모든 이방인적 조건으로부터 책임의 윤리를 말한다면 르 블랑은 실증적으로 분석된 외국인의 조건으로부터 그의 표현의 의하면 "추론해서raisonner" 이 조건이 우리들 각자 자기의 조건이라는 것을, 우리들 하나하나가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가 국경에 존재하는, 안에도 밖에도 존재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유의 지상권"을 부여하는 것은 데리다로 즉각적으로 보내진다. 그리스 시대에 소위 'noble étranger귀족적 외국인'과는 같은 지위를 가진다. 그의 다양한 참조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에 바닥에 흐르는 한 논리는 레비나스의 '자기집'의 논리, Nation의 논리이다.
그가 레비나스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거하고 사회정치 철학적 접근을 잘 보여주는 것은 그가 "비가시성"을 "특수한 사회적 구성의 산물"로 이해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해 "비가시성은 다만 인정의 부인의 산물이 아니라, 다른 인간의 "타자성"의 지움으로 해석되는 불안한 삶의 작업oeuvre의 지각의 부재, 다시 말해 사회적 지움désoeuvrement의 결과이다"라고 말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 그의 철학적 관심은 어떤 정치적 조건에서 비판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비가시성으로 돌아가는 가에 있다. 이런 '지움의 논리'에 직면에서 그가 리쾨르의 말을 빌어,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타자로서 자기 자신soi-même comme un autre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이다.
Dedans, dehors, la condition de l'étranger(2010)
Que faire de notre vulnérabilité(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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