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의 데카르트, 칸트와 후설 읽기가 우리의 상식을 후려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셸 앙리의 철학사 읽기는 자주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다. 그의 데카르트 읽기, 또 가장 정확히 데카르트를 이해했다고 앙리가 말하는 멘느 드 비랑 읽기, 또 그의 맑스 읽기 등등 더 계속 언급할 수 있는 그의 철학사 읽기는 처음부터 철학사를 다시 읽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앙리가 '물질 현상학'이라고 부르는 '근본적인 현상학'의 한 기원으로 언급하는 키르케고르 읽기에서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서양철학사 안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하는 모든 철학자들은 우리의 머리를 후려치는 그 정도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모두 그들 자신의 철학사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철학의 전개의 조건으로서 제시한다. 데카르트가 그랬고, 칸트가 그랬고, 니체가 그랬고, 맑스가 그랬고, 또 비트겐슈타인이 그러했다. 같은 방식으로, 가까이, 레비나스는 서양철학을 동일성의 철학으로 타자에 무지한 철학으로 요약하면서 타자의 철학을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앙리는 서양철학을 존재론적 일원론monisme ontologique(혹은 현상학적 일원론)으로 정의하면서 서양철학을 나타남의 이중성duplicité(ou dualité) de l'apparaître에 무지한 철학으로 요약한다. 보통 우리는 전자를 외재성 혹은 절대적인 초월성의 철학이라고, 후자를 근본적인 내재성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외상으로 드러나는 두 철학자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두 철학자는 같은 철학적 직관 위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직관으로, "나(자아)의 자기에 못 박혀있음"의 사실이다. 이 상태는 키르케고르에서 "절망"이라고 말해지고, 두 철학자에서 이 절망은 존재의 "고독"이라고 불린다. 같은 철학적 직관 위에서 출판한 두 철학자가 첫눈에 보기에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의 키르케고르 읽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레비나스에서 부정적으로 읽히는 것은 앙리에서 긍정적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이상하게 이 두 철학자는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것은 이 고독은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실성, 나의 존재existence의 '물질성'으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할 수 없음', 부동성immobilité은 존재의 운동, 더 정확히 삶의 운동을, 자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레비나스에서 탈출의 욕구/필요, 앙리에게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부동성은 동성의 가장 깊은 동기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나와 자기와의 "얽힘은 고통의 형식 아래에서 나타나기"(De l'évasion, DE, 98) 때문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절망' 안에서 자아는 자기이고자 하면서 동시에 자기이기를 원치 않는다. 이 절망의 상태는 키르케고르에서 '영원한 것'으로 말해진다. 키르케고르가 절망을 "치명적인 병"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보통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해지는 이 병은 역설적이게도 레비나스가 정확하게 말하듯 "도달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절망"(DE, 105)이다. 전기의 레비나스의 존재론은 이 절망의 존재론의 전개와 다르지 않다. 앙리는 어떠한가? 앙리는 레비나스와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현시의 본질>의 한 구절을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어떻게 그리고 왜 절망이 치명적인 병이며, 영원인가에 이유가가 있다. 자기와의 관계가 ...절망의 조건과 본질로서 이 관계를 자르고자 하는 자아 안에 지속하는 한에서 말이다. 절망은 자신 안에 삶을 지닌다. 절망이 죽고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양태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듯] "절망의 고문은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죽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 원함 안에 죽을 수 없음, "죽음 없는 죽음", 바로 여기에 "치명적인 병"이 있다."(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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