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정론의 종말
1. 아마도 20세기의 우리의 의식에서 가장 혁명적인 것은 - 또한 성스러운 역사(l'Histoire Sainte)의 사건이기도 한 - 서양 사유의 명시적이고 잠재적인 신정론과 고통과 그것의 악이 이 세기의 전개 안에서 끌어낸 형식들 사이의 모든 균형의 파괴이다. 30년간 이 세기는 두 개의 세계 대전과 우익과 좌익의 전체주의와 히틀러이즘과 스탈린이즘과, 히로시마, 굴락, 아우쉬비치와 캄보지아의 인종말살을 보았다. 이 세기는 이 야만의 이름들이 의미하는 모든 것의 반복적인 돌아옴 안에서 완성된다. 마치 자신을 해방하듯이 온 고통과 악은 어떤 이성에 의해서도, 정치가 된, 모든 윤리와 분리된 이성의 과장 안에서도 제한되지 않는다.
-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이성의 과장 안에서조차 20세기의 근본 악, 야만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 야만 앞에서 어떤 유용성을 찾을 것인가?
2. 이 사건들 중에서, 히틀러 정권 아래에서 유태인에 대한 학살은 우리에게 악의 악마적인 공포 안에서 나타난 무상의 인간의 고통의 전형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다만 주관적인 감정이 아닐 것이다. 고통과 모든 신정론 사이의 불균형은 아우쉬비치에서 눈을 찢는 작열과 함께 드러났다. 이 가능성은 수천년의 전통적인 신앙에 문제를 제기한다. 니체의 신의 죽음이라는 말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거의 경험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가? 이제 성스러운 역사의 이 드라마가 그 주연배우로 오래 전부터 항상 이 역사와 연계되었던 한 민족의 집단적이 영혼과 그들의 운명을 마치 어떤 민족주의에 한정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알단의 상황들에서 이 민족의 이야기가 아직도 계시(la Révélation)에 속한다는 것 - 그것은 세계의 종말(apocalypse)로서 일 것인데 - 그리고 그것은 철학자들에게 "생각하도록 한다(donne à penser)"는 것, 혹은 생각을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에 놀래야 한다(주1).
- 아도르노가 "아우쉬비치 이후에 어떻게 시를 쓸 수 있는가?"라고 말했듯이, 주1)에서 레비나스가 들고 있는 블랑쇼의 한 노트에서 블량쇼는 "아우쉬비치의 기억 안에서, 화장터 근처에 그들과 같이 묻은 그들의 노트들에서 우리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라, 잊지 말아라, 그런데 절대로 당신들은 알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기억 안에서, 어떻게 철학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어서 레비나스는 "굴락(소비에트의 강제 노동 수용소)과 또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고문이 행해지는 모든 다른 장소들에서 일어난 죽음들은 우리가 현재 아우쉬비치에 대해서 말할 때 현전한다"고 말한다.
3. 세 번째 단락에서 레비나스는 카나다의 유태인이면서 철학자인 에밀 파켄하임의 <역사 안에서 신의 현전>을 소개한다. 이 단락은 옮기지 않고 넘어간다. 이어지는 단락에서 다시 말할 것이다.
4. 20세기의 사건들을 통해서 근본적인 악으로 나타났던 쓸데없는 고통이 이제 제기하는 철학적인 문제는 신정론의 종말 이후에 종교성(la religiosité)과 선성과 관계된 인간의 도덕성을 보존할 수 있게 하는 의미와 관계한다. 우리가 방금 인용한 철학자에 의하면, 아우쉬비치는 역설적이게도 아우쉬비치에서는 침묵했던 신의 계시를 동반한다: 충실에의 명령(commandement de fidélité). 아우쉬비치 이후에 아우쉬비치에 부재한 신을 포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적인 무화와 그들의 유대주의와 그들의 수천년의 실존이 보존했던 성경의 윤리적인 메시지의 망각을 목적으로 했던 국가-사회주의의 범죄적 기획을 완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신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부재했다면, 거기에 분명 악마가 현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에밀 파켄하임은 유대인들은 악마적인 기획과 공모하기보다 우대인으로 살고 유대인으로 남을 것을 의미로서 제시한다. 아우쉬비치 이후의 유대인은 유대주의에의 충실과 자신의 실존의 물질적 정치적 조건들에의 충실에 바쳐진다.
5. 토론토의 철학자의 이 반성, 유대민족과 상관적인 용어들로 정식화된 이 반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예보에서 캄보지아에 이르는 이 세기의 잔인함에 참여했던 인류는 - 여기서 유럽의 "인문학"은 종말에 이른 듯이 보이며 -, 모든 종류의 공포 안에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화장터의 연기를 이미 그리고 여전히 마시고 있는 인류는 - 여기서 신정론은 단번에 불가능하게 드러났던 -, 무관심하게, 이 쓸데없는 고통에서, 세계가 그 정치적인 숙명론으로 빠지도록 내버려 두면서, 이 세계를 포기하는가? 아니면, 어떤 질서 혹은 그것이 무질서라고 할지라도, 어떤 종류의 질서와도 연계할 수 없는 인류는 - 여기서 인류는 계속해서 악마적으로 사유한다 -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아주 어려운 어떤 신앙 안에서, 신정론 없는 어떤 신앙 안에서, 성스러운 역사를 계속 유지하는가? 이 역사는 각자의 자아(moi)의 자원들에, 다른 인간의 고통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자아의 고통에, 쓸데없는 고통이 아닌 (혹은 사랑),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것이 아닌,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가지는 자아의 공감(compassion)에 호소한다. 우리는 이러한 충실에 바쳐진, 어떤 종류의 위로하는 신정론의 그림자도 없었던 쓸데없는, 정당화되지 않는 고통 이후에, 20세기로부터 나온 이 두 번째의 선택에 바쳐진 유대민족과 같지 않은가(주2)? 이로부터 오늘날의 신앙 안에 새로운 신앙의 양태가, 우리의 도덕적인 확실성 안에, 근대의 아주 새로운 본질적인 근대의 양태가 솟아난다.
- 여기서 성스러운 역사의 의미가 설명된다. 이 단락에 주가 하나 달려있다. 신정론보다 지고한 사유는 성경 안에서도 발견된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특히 욥의 이야기는 그러하다. 여기서 레비나스가 칸트의 유고집의 신정론에 대한 1791년의 글에서 욥에 대한 해석을 인용하는 부분만 옮긴다:여기서 칸트는 신정론의 논의의 허약성을 드러낸다. 여기에 그의 "오래된 책이 유비적으로"드러내는 결론이 있다: "이런 정신 상태에서, 욥은 그는 자신의 도덕성을 신앙 위에 세운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신앙을 도덕성 위에 세웠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이 경우 신앙의 진정성은, 그것의 허약함이 무엇이든지 간에, 종교를 위로의 차원에서 근거짓는 것이 아니라, 잘 이끈 삶(une vie bien conduite)으로부터 종교를 근거짓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신앙과 종교에 대한 레비나스의 논의는 데리다의 <믿음(신앙)과 지식>에 대한 논의와 같은 폭을 가지고 접근된다. 다시 한 번 반복하면,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아주 어려운 어떤 신앙 안에서, 신정론 없는 어떤 신앙" 은 내 안에서, 나의 원천으로부터, 타인의 쓸데없는 고통으로부터 내게 온 나의 의미있는 고통 안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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