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과 지식

데리다, 믿음과 지식(11)

aurorepark 2010. 8. 23. 17:54

11. 하나의 명백한 사실로서 내가 잠정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그것이 옳거나 그르거나 간에, 상기하자: 종교에 대한, 이러 저러한 종교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성직에 종사하는 신부도, 신학자도, 종교를 대표하는 자도, 그것의 전문가도, 종교 그 자체의 적도, 계몽을 말하는 일단의 철학자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아니다. 반면 우리는 다른 것,  즉 - 신중하게 제시하자 - 정치에서,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는 모델로서 공화적 민주주의라고 말해지는 것, 이것으로부터 모든 (교회에 속한, 비세속적인) 외적인 힘을, 예를 들어, 도그마, 정통주의, 혹은 종교적인 권위 (견해 doxa 혹은 단순한 믿음 croyance에 의한 지배로 이것은 믿음 foi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를 해방시키면서,  철학을 대중적인 것, 대중성에, 나아가 낮의 빛에, 더 나아가 계몽에, 심지어 대중적 공간에서 밝혀지는 덕성에 연결하는 이것에 대한 제한 없는 취향 - 그것이 아니라면, 조건지어지지 않은 선호를 나눠가진다. 적어도 이러한 유비적인 방식(뒤에서 다시 말할 것이다)으로, 적어도 우리가 여기서 함께 말하는 그 동안, 우리는 여기 지금에  한정되고  유보된 태도, 일종의 판단중지 epokhè를 이식하고자 할 것이다. 이것은 - 그것이 옳건 그르건, 그것의 내기는 아주 심각하기에 (이러한 이식을 시도한다) -  종교를 "단순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서 드러나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가진다.    


- <foi>를 처음에 <신앙>으로 옮길까 생각하다 좀더 일반적인 용어인 <믿음>으로 옮겼다. 그렇게 옮긴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헤겔의 <믿음(신앙)과 지식>에서 그는 "믿는 것은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은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과 연관된 일련의 철학적인 믿음과 지식의 논리적인 관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나는 믿음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불어로 croyance와 foi는 영어의 belief와 faith처럼 구분된다. 우리말에도 믿음과 신앙으로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전자를 단순한 믿음으로 후자를 믿음으로 옮기는 나의 옮김이 불안하다. 이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말로 원어를 첨가함이 없이 옮기기 위해서는 foi를 <신앙>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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