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글이다. 아주라고 하니 참 오래된 것 같다. 2003년 4월 n° 419 Magazine littéraire 는 <레비나스>를 특집으로 다뤘다. 책장 저 아래 쌓여 있는 잡지들을 뒤져서 찾아냈다. 그러고 보니 8년 만에 먼지 속에서 다시 꺼낸 것이다. 다시 펼쳐본다.
Magazine littéraire, n° 419 Avril, 2003
그 안에 "데리다의 인터뷰"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레비나스와 데리다 사이의 일련의 차이와 나눔에 대해서 데리다 자신이 말한다. 또 레비나스 철학의 '유행mode'과 그것의 위험에 대해서, 특히 그 철학이 탈정치적으로 읽히고 그의 윤리와 형이상학이 선전용으로, 장사용으로 쓰이는 위험에 대해서 경고한다. 그리고 레비나스 철학의 정치적인 미래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데리다는 "말하기 위해, 먹기 위해서 열린 입, 그런데 여전히 벙어리인 입"의 그런 "틈hiatus"이 정치와 윤리 사이에 있다고, 그리고 이것이, 이 틈, 이 간극이 특히 정치적인 책임의 조건이라고 대답한다. 길지 않은 인터뷰 안에서, 알렝 다비드의 세 개의 짧은 질문과 세 개의 긴 데리다의 대답이 이어진다. 여기에 옮긴다. [잡지 안에 실린 데리다 사진이 참 좋은데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Rio-Vincent이 그린 데리다의 초상을 발견했다. 보기에 나쁘지 않다.]
Rio-Vincent이 그린 데리다의 초상
레비나스와 함께 데리다 : "정감과 믿음 안에 머물던 그와 나 사이에서"
Derrida avec Lévinas : "entre lui et moi dans l'affection et la confiance partagée"
- 알렝 다비드. 레비나스가 당신에 대해 쓴 글["Tout Autrement", 1973, 1976*] 마지막에 그는 "철학에서 만남의 양태로서" "교차의 한 가운데에서 접촉의 즐거움 plaisir d'un contact au coeur d'un chiasme"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당신은 그 교차chiasme는 "아주 얄팍하다 très effilé"라고 대답했다. 나는 우선 이 말의 의미와 당신과 레비나스 사이의 오랜 접촉의 의미를 알고 싶다. 이 접촉은 - 나는 감히 지속적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 텍스트를 통해서 해석되었다: "폭력과 형이상학"(1964, 1967). "바로 이 순간에, 이 작품 안에, 나의 불림(여기 있음)** En ce moment même, dans cet ouvrage, me voici"(1980,1987), <안녕 엠마뉘엘 레비나스 Adieu à Emmanuel Lévinas>(1995, 1997), 그리고 <촉각, 장-릭 낭시 Le toucher, Jean-Luc Nancy>(2000). 이 동행compagnonnage***, 레비나스와의 이 무한한 대담entretien infini은 무엇을 말하는가?
[*"Tout autrement"은 1973년 잡지L'arc 에서 데리다를 특집으로 다룰 때 레비나스가 그에 대해서 쓴 글이다. 이 글은 76년 Noms propres 에 다시 실린다. **"me voici"는 누군가의(그것이 신이든, 누구이든) 부름에 "여기 있다"라고 대답하는 말이다. 일상에서보다 주로 성당에서 견진을 받을 때 이름이 불려지면, "me voici"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레비나스 철학에서 부름, 위급한 부름에 대답해야 하는 나의 책임을 의미한다. ***compagnonnage, 이 말은 단순한 동행을 지시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그 본래의 뜻으로 '동업조합'을 의미한다. 블랑쇼가 밝힐 수 없는 공동체라고 부른 우정의 사유의 공동체를 지시한다.]
- 데리다: 어떻게 이런 질문 앞에서 무장해제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가? 그의 문자 자체 안에서 ("동행", "무한한 대담"), 이 질문에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블랑쇼의 이 제목들에서, 또 다른 한 친구, 레비나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un grand ami), 또 다른 위대한 사상가를 생각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유에 대한 세심한 주의vigilance는 오래 전부터 나의 삶의 행운들 중의 하나였으며, 내 삶의 마지막까지 그럴 것이다. 그런데 "동행", "나를 동행하지 않는 자Celui qui ne m'accompagnait pas"라는 그의 문장에서, 나는 당신을 버림이 없이 당신을 홀로 내버려두는 사유의 우정을 이해한다.
스트라스부르크 시절의 레비나스와 블랑쇼
이 질문은, 그 두 사람이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근접성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일종의 분리, 무한의 거리, 중단, 심지어 반박, "관계 없는 관계"를 지시한다. 이 두 광용어(동행, 무한한 대담)는 대담이 계속되는 한에서 번역불가능하다. 이것은 레비나스와 블랑쇼 사이의 사유의 우정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우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블랑쇼의 죽음 이후에 내가 계속 생각하는 낯설고etrange, 유일하고singumière, 모범적인exemplaire 우정이다. 그것은 수수께끼처럼 머물기 때문이며, 그것은 어떤 공간으로 나를 인도한다. 그 안에, 확신하건데, 다른이들과 더불어 내가 "자리한 situé", 것과 같은, 또 그 안으로 자석에 끌리듯 끌리는 것을 느낀다. 물론 여기에 "블랑쇼주의적인blanchotisme" 혹은 "레비나스주의적인lévinassisme"이라는 것이 없이 말이다. 사유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이 두 형용사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으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없다. 레비나스와 블랑쇼가 그들의 일치와 그들의 연대를 말하고 드러냈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분리하는 심연은 화해할 수 없는 갈등, 때때로 극적인 혹은 폭발적인 대립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성적인 것neutre"에 대해서[데리다의 Adieu à Emmanuel Lévinas, Galilée, p. 98-99 참조], "익명성"에 있어서, 또 하이데거 철학에 대해서 그들이 취하는 거리의 형식 안에서 그러하다. <사드>, <로트레아몽> 혹은 <바타이유>가 적어도 환유적으로 재현하는 그 거리를 말함이 없이, 또 전쟁 전과 후로, "정치적인 것", 그들의 경험 혹은 그들의 각각 취하는 정치적인 "실천"을 잊음이 없이 말이다. 그들 둘은 아주 일찍부터 전쟁 전에 이미 히틀러리즘을 고발했다. 그런데 "정치적인 것들"의 현장에서 그들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전쟁 후에 레비나스는 한마디로 하면, "121 선언"[지식인들의 알제리 전쟁 거부 선언]이나 "68년 오월"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같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한데 묶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그들 사이에는 침묵으로 환원된 끔찍한 불일치의 장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이 둘과 난 아주 가깝게 연결된 듯이 느끼면서도 그들과의 불일치를 지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하의 웅성거림remuement을 나는 해석하고자 한다. 이 지하는 이 무한히 먼거리로부터 그들에 대한 나의 애정admiration과 그들 각각에 대해 진 빚에 대한 감사의 풍경을 알리면서 이 풍경을 지운다creuse. 바로 여기가 이 격랑의/고통의 tourmenté 풍경의 본질적이고 살아있는 장소이다. 나는 바로 이 풍경의 "심장"*을 (혹은 이 풍경의 "균열faille"을) 말하고자 했다. 어디서, 어떤 환원불가능한 거리에서, 다른이들과 함께, 나의 세대 혹은 후세들 안에서 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가 지속적으로 듣고자한 것은 귀를 멀게하는 이 균열의 울림/으르렁거림grondement이다. 나는 이 사물의 "뛰는battre" 소리를 듣고자 했다 (또한 "투쟁하는 소리se battre"또한 듣고자 했다. 왜냐하면 예고된 지진의 흔들림, 일종의 잠재적인 전쟁이 여기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박동battement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좀전에 당신이 "무한한 대담"의 "심장"이라고 부른 것의 맥박처럼 말이다.
[*여기서 '심장'은 앞서서 레비나스가 le contact au coeur de chiasme, "교차의 한 가운데(심장)에서(의) 접촉"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무한의 대담이 있다. 내가 레비나스를 읽은 이래로, 나의 작업은 그의 후설에 대한 최초의 텍스트들(1930 !), 그리고 전쟁 전에, <전체성과 무한>(1962) 훨씬 이전에 쓰여진 텍스트들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이 "동행", 비록 출판된 텍스트들에서 또 강의들에서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고(왜냐하면 당신도 알듯이 레비나스는 나의 세미나에 자주 참석했기 때문에), 그는 항상 쉬지 않는 논쟁과 상대를 존중하는 그런데 때때로 아주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교차, "교차의 심장"에 대해서는, 또 거기서 어떤 접촉이 있었는지 나로서는 - 이 주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 알 수 없다. 그런데 거기서 분명히 심장/마음이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때때로 논쟁의 형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내 안에서, 나와 나 사이에서, 내 안의 레비나스와 내 밖의 레비나스 사이에서, 그리고 항상 정감과 믿음 안에서 존재하던 그와 나 사이에서 그의 자리를 발견한다. 이것은 당신이 언급한 책들에서도 보인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은 출판된 글들에 대한, 우선 레비나스의 글들에 대한 세세한 분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간단하고 도식적인 대담의 편리함을 따라서 만일 우리가 적어도 내적이며 외적인 이 논의의 일련의 제목들을 주고자 한다면, 나는 여기서 몇몇 중요한 지점들만을 언급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탈구축"일반이 아니다. 레비나스의 방식으로, 그의 용어들을 따라서, 이 단어를 사용함이 없이, 레비나스 또한 존재론에 대한, 그 자세한 내용을 다 열거함이 없이, 서양철학을 지배하는 것들에 대한 강력한 "탈구축"을 행했다. 이 탈구축의 흔적은 우리의 공통된 탐구 안에서 발견된다. "흔적trace"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60년대에 우리가 만든 이 용어는 여러가지 점에서 아주 다른 용도를 가진다. 그런데 이 우연한 동음이의어와 본질적인 동의어 사이에, 이 같은 이름은 의심의 여지없이 다른 것들보다 당신이 상기한 "교차의 한 가운데(심장)에서 접촉contact au coeur du chiasme"을 축약하고 기입한다.
1. 특히 "폭력과 형이상학"[1964, 이 글은 1967년 <글쓰기와 차이>에 다시 실림]에서 우선 내가 염려한 것은 레비나스의 전략과 담론의 경제였다. 이것은 절대로 이차적인 스타일과 수사학의 문제가 아니다: 레비나스가 그리스-헤겔적인 존재론, 그리고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비판하면서 - 그와 같은 반박이 정당화다고 할지라도 -, 계속 그들의 용어, 논리, 구문적, 의미론적 구조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을 규제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가? 따라서 나는 레비나스의 "기획"을 전면적으로frontalement 반대함이 없이,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들과 자가당착을 명시화하고자 했다. 나는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필요했었다고 믿는다.
2. 이어서 (그런데 그 전제들은 이미 "폭력과 형이상학"의 결말에서 눈에 띠는데) 성적인 차이와 남근 중심적인 비대칭성에 대해서 질문을 제기했다. 나는 여기서 레비나스에서 그것들의 징후들과 그것들이 감춘 폭력을 밝히고자 했다. 물론 레비나스는 철학에서 아주 드문 방식으로, 에로스와 여성성을 현상학적 주제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용기와 아주 중요한 흔적을 거기에 남겼다. 여성성에 자석에 끌리듯 끌리는 것(이것은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블랑쇼에 대해서는 말해질 수 있는 것인데)은 항상 남성적인 말에 의해 귀가 막히는 복종의 작업을 배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레비나스는, 이것은 아주 드문 경우인데, 철학적인 자신의 서명의 남성성을 첵임진다. 이 내기는 그 한계를 정할 수 없으며, 여기서 발견되는 위험은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탈구축이 본래적으로 지닌 심각한 한계이다. "바로 이 순간에, 이 작품 안에서, 나의 불림(내가 있음), En ce mement même, dans cet ouvrage, me voici"[1980, 1987 년 Psyché, Galilée에 다시 실림]에서 나는 (내 안에서 혹은 가상적인 논쟁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그런데 굽힘없이, 남성우월주의에 반해서, 더 나아가 레비나스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 예를 들어 전적인 타자tout autre의 이름으로 그가 명명하는 'il' '그', 또 가족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의 전적인 지배(한 번도 레비나스는 아이enfant라고 쓴 적이 없고 항상 아들Fils이라고 쓴다) - 가부장제도에 대해서 반박한다. (유대, 기독교, 이슬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이 아브라함적인 전통의 힘에 기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의 특권은 내가 <우정의 정치학>[Galilée, 1994, p. 338.]에서 레비나스와 블랑쇼 그리고 다른이들의 사상에서 이 전통의 힘과 그것이 가져오는 심각한 결과들에 대해서 질문하고자 시도했던 fraternité형재애/박애의 특권과 떨어질 수 없다[Adieu, p. 123 이하를 참조할 수도 있다]. 여성성féminité에 대한 논쟁은 환대의 문제를 다루면서 Adieu에서[70쪽 이하] 그리고 <촉각, 장-뤽 낭시 Le toucher, Jean-Luc Nancy>에서[81쪽 이하] 아주 길게 전개되었다. 뒤의 책의 한 장(L'intouchable ou le voeu d'abstinence, 만질 수 없는 것 혹은 금욕의 맹세)은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에로스의 현상학"과 "그것의 명백한 비대칭성", 그리고 "얼굴의 초월성", "애인의 여성성" 그리고 "애무"에 바쳐졌다. 그리고 내가 "굽힐 수 없는 형상implacable configuration: 여성성, 아이, 동물, 무책임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결과들을 다뤘다[103쪽이하].
3. 살아있는 것과 동물에 대하여, 나는, 아직 책으로는 출판되지 않았지만 [L'animal que donc je suis, 2006], 1997년 스리지Cerisy 강연에서 레비나스와의 잠재적인 논쟁의 칼날을 세우고자 했다aiguiser.
4. 그리고 끝으로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 이것은 특히 당신이 "무한한 대담"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서 가장 지속적인 것인데, 문화와 정치적인 역사에 있어서, 특히 프랑스에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 정치적인 선택들에서 레비나스와 나 사이에는 아무 것도 다른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나는 텍스트로 돌아가고 싶다. 물론 레비나스의 텍스트로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당신이 무한의 대담이라고 부르는 것이 항상 저항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대담", 대개 유한한 아주 단순한 대담, 인터뷰, 나는 당신과 내가 갇힌 이 대화의 한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레비나스, 우리가, 아니 내가 자주 기억하는 그의 얼굴
- 알렝 다비드: 레비나스가 유행이다: 다시 말해 그는 한 시대의 명증성의 결핍의 핑계prétexte à un certain défaut de lucidité de l'époque로 사용된다. 당신은 이것이 그의 작품으로부터 나오는 사실인지? 아니면, 작품 자체가 이러한 도둑질*récupération에 대항할 자원을 가진다고 생각하는지 알고싶다.
[récupération, 이 말의 본래적인 의미(회수, 회복, 보충 등등)로부터 파생된 의미로 '작은 도둑질' 혹은 더 나아가 자본가들이 무엇이든지(페미니즘, 환경보호 등등) 챙겨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레비나스의 '윤리', '타자의 배려' 등등 그의 사상을 챙겨서 장사하는 학자들을 지칭한다.]
- 데리다: 일단 레비나스가 유행인 것은 반길일이다. 비록 그가 항상 제대로 잘 읽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서야 레비나스의 작품은 쉬운 참조, 즉 일상적인 담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존재론에 대립해서 그가 "형이상학", "제일 철학" 혹은 그가 "윤리"라고 부르는 것이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심지어 선전도구적인, 탈정치적인 도구가 되는 것은 이러한 유행이 치러야 할 값이다. '타자'의 참조는 점점 쉬어지고, 주술적이 되며, 점점더 "타자와의 관계" 혹은 "타자의 존중"과 같은 관례적인 표현을 여기 저기서 지겹도록 발견한다. 사람들은 권위의 논증을 가진 철학적인 오만과 심각의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이런 게으르고 구어적인 인삿말로 레비나스 위에 양념/소금을 친다. "윤리"라는 말도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자주 이 말들을 가지고 레비나스 자신이 자신의 사유를 드러내기 위해 감당한 위험과 어려움을, 그가 도상에서 알아차린 함정과 괴변, 또 아포리 - 이것들에 대해 인내할 것을 고백한(그의 사유 안에서 "관례적인bien-pensant" 그런 것은 절대로 없다) - 등을 읽지 않기 위해 잊는다. 가장 큰 위험은 제 삼자, 타자의 타자의 출현과 더불어서 나타난다. 제 삼자는 얼굴의 대면의 관계가 깨질 때 나타나며, 전적인 타자 안에 동일자, 비교, 이성, 보편적인 지성, 법의 제정(레비나스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 그리스적 철학적 담론이 다시도입되고, 다시 도입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윤리의 중심에서 경계하고 있는 유대적 유산, 아니 레비나스가 성성sainteté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복잡하게 만든다(어느날 레비나스는 나에게 "당신도 알듯이 사람들이 나의 철학적 주제로 윤리를 말한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윤리가 아니라 성성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에 또한 "나와 유사한 자/타인semblable", 이웃, 신과 같은 타자, 그리고 다른 인간의 인간l'homme de l'autre homme의 문제가 있다. 한 번은 "Tout autre est toout autre, 전적인 타자는 전적인 타자이다"라고 전혀 해석되어질 수 없는, 그리고 이 전적인 타자와 연관된 쟁점들은 더 이상 통제되어질 수 없는 위의 공식으로 레비나스에게 대답한 적이 있다. 이 공식은 레비나스 담론에 대한 가능한 충실과 저항을 한데 표현한다. 당신이 언급한 "명증성의 결핍", "도둑질"이라고 부른 것의 가장 걱정스러운 형식들 중의 하나는 가장 위급한 "정치적인" 책임의 피할 수 없는 급박함과 비극적 갈등을 중성화하기 위해 "윤리"를 가정된 심급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윤리", "타자와의 관계"를 법적이고 정치적인 것과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혼동 안에서 어떤 중요한 정치적인 결정을 은밀하게 획득하기 위해, 또 불법적으로 통과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경우에, 그것들을 법적이고 정치적인 것을 중성화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나는 다만 중동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고통스런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레비나스 수용에 있어서 탈정치화의 위험이 있다. 나는 이것이 전적으로 책임있는 일이고, 전적으로 무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 이런 속도에서 - 는 증명할 수는 없지는 어쨌든 레비나스에는 정치와 중요한 정치적인 실천, 반박할 수 없는, 혁명적적인 정치의 잠재성semence 이 있다(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인, 무주택자, 항상 점진적으로 타자에 대한 책임에 접근하게 하는 타율적인 구부러짐la courbure hétéronomique*에 대한 환대hospitalité이다). 또한 정치적인 것의 혁명이 문제인데, 여기서 자율autonomie과 해방émancipation 등등의 의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기함이 없이 우리가 겪게되는 타율hétéronomie과 제 삼자le tiers의 경험이 있다. 레비나스 글의 이러한 혁명적인 영역은 당신이 말한 모든 종류의 "도둑질"에 저항한다. 그런데 여전히 이 글을 읽어야 하고 해석하고, 어떤 결정된 방식으로 그의 '논리적인 절합articulation'을 이런 저란 의미에서 측정해야 한다. 그것은 어렵다. 텍스트는 절대로 그것의 의미에서 자연적이고 결정할 수 있는 소여가 아니다. 우리에게 부여되는 읽기의 책임은 정치에의 연루를 피할수 없다.
[타율적인 구부러짐, la courbure hétéronomique, 이 낯선 표현이 대해서 몇몇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이 표현은 나로서는 두 번째 만나는 데리다의 표현이다. 사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데리다의 고유한 표현들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일이 아니다. 이 표현은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인식의 한계에서, "Adieu", 다시 말해 레비나스를 보내면서 Pantin 묘역에서 그가 읽은 조사弔詞 안에서 발견된다. 그의 책 Adieu, 22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문장, 감동의 그 문장을 읽어보면: "Chaque fois que je lis ou relis Emmanuel Lévinas, je suis ébloi de gratitude et d'admiration, ébloui par cette nécessité, qui n'est pas une contrainte mais une force très douce qui oblige et qui oblige non pas à courber autrement l'espace de la pensée dans son respect de l'autre, mais à se rendre à cette autre courbure hétéronomique qui nous rapporte au tout autre(c'est-à-dire à la justice, dit-il, quelque part, dans une puissante et formidable ellipse: le rapport à l'autre, dit-il, c'est-à-dire la justice), selon la loi qui appelle donc à se rendre à l'autre préséance infinie du tout autre. 매번 내가 레비나스를 읽고 또 읽을 때마다, 나는 무상과 감탄으로 눈이 부시며, 이 필연성에 의해 눈이 부신다. 그것은 강압이 아닌 그런데 강요하는 아주 부드러운 힘이다. 그리고 이 힘은 타자에 대한 그의 존중 안에서 사유의 공간을 다르게 구부리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타자의 무한한 우선성에 복종하도록 부르는 법에 따라서 우리를 전적인 타자와 관계시키는 이 다른 타율적인 구부러짐에 자신을 돌려준다/복종한다(다시 말해 정의, 그가 어딘가에서, 힘있고 놀라운 기울임 안에서 말한 정의에 복종한다; 타자와의 관계라고, 다시 말해 정의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 '구부러짐courbure'은 레비나스 책에서 발견된다. 그의 <전체성과 무한>에서 그는 "Autrui me mesure d'un regard incomparable à celui par lequel je le découvre. La dimention de hauteur où se place Autrui, est comme la courbure premier de l'être à laquelle tient le privilège d'Autrui, le dénivellement de la transcendance. 타인은 나를 내가 그를 발견하는 시선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시선으로 나를 측정한다. 타인이 자리하는 그 높이의 차원은 마치 존재의 최초의 구부러짐과 같다. 여기에 타인의 특권이 자리하며, 초월성의 격차가 생겨난다."(TI, 86)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페이지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인식에서처럼 향유와 소유로, 자유로 변하지 않는다. 타인은 이 자유를 지배하는 요구처럼, 그리고 이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가장 본래적인 것으로서/처럼 강요된다. ...타인의 현전 - 특권적인 타율성 - 은 자유에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수여한다."(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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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렝 다비드. 나의 질문을 보다 날것의 방식으로 다시 묻겠다: 얼마전에 당신은 Voyous, <불량배들>를 출간했다. 당신은 세미나에서 "짐승과 지상권"에 대한 반성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보기에 한편으로 어떤 의미에서 더 멀리 가거나 - 아니면 더 가까이 - 레비나스에 다가가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레비나스가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어떤 정치학une politique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데리다. 만일 당신이 말하는 "어떤 정치학une politique"를 규율을 가진 프로그람으로 이해한다면, 대답은 "아니다"이다. 나는 레비나스가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어떤 정치학을 제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그의 "정치적인 것은 나중에le politique après"라는 구호를 탈정치적인 입장과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다. 레비나스는 메시아주의적이고 선지자적인 윤리적 사유로부터 출발해서 평화에 대한 이전과 다른 사유로부터 시작해서 정치의 개념과 그것의 공간을 달리 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평화는 순수하게 정치적인 사유를 초과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국가의 전제" 혹은 "국가의 익명적인 보편성"이라고 부르는 것 너머에 의존하는 평화를 지시하기 위해. 이것을 가지고 그는 국가 없는 아니키즘이 아니라 다비드의 국가과 세자르의 국가를 대립시킨다. Adieu에서 나는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 너머는 비-정치적인 것으로 향하는 기호가 아니다"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말하고자 했다. 윤리와 정치사이의 어떤 "간극hiatus"이 (말하기 위해, 먹기 위해 열린 입, 그런데 여전히 벙어리인 열린 입과 같은 틈")이라고 내가 부르는 것, 이것은 특히 정치적인 책임의 조건이다. 그것은 도식이 있어야 하고, 매번 단독적인 상황에서, 상대주의적임이 없이, 발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레비나스는 윤리적이고 보편적인 보호막garde-fous들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윤곽을 적어도 부정적으로나마 지시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레비나스가 "민족주의적 특수주의 particularisle nationaliste"(이스라엘과 팔레스테인의 정치를 지칭하는 것)라는 이름으로 비판하던 것, 또한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외국인"에 대해 그가 쓴 것, "이방인을 사랑하는 신"에 대해 그가 강의한 것, "피난민들과 추방인들을 환대하는 도시"에 대해서 그가 말한 것 등을 생각해 보라. 그는 "신의 이미지는 상징들 안에서 보다이방인의 권리 안에서 더 존중된다"고 말한다. 보편주의universalité는 ...문자를 파열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문자 안에서 자고, 폭발하기 때문이다"[<탈무드에 대한 4개의 강의, Quatre leçons talmudiques, éd. de Minuits, 1987, p. 60-61]. 이것은 바로 레비나스가 항상 신체, 필요의 물질성, 돈의 문제들에 대해 가진 정치적인 관심이다. 그리고 이 염려는 내가 의심의 여지없이, 다른 전제들과 다른 목적들을 가지고 그와 나눠가지는 것이다. 나는 그와 이스라엘의 운명, 명애, 이미지, 그리고 미래의 문제에 있어서 그와 염려를 공유한다. 하루는 그는 아주 대담하게 "모든 상황에서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 말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간청하는 것"은 "학살자들의 허리띠에 새겨진 Gott mit uns와 마찬가지로 쓰레기와 같다"고 말한 것을 Alain Finkielkraut는 자신의 글에서 인용하고 있다[Alain Finkelkraut, "Le risque du politique 정치의 위험", in Emmnuel Lévinas, Cahiers de Herne, 1992, p. 473]. 사브라와 샤틸라(Sabra et Chatila) 학살 사건 이후의 인터뷰에서 레비나스는 "이스라엘과 윤리"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여기서, 누구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당신들은 유럽에 살고, 평화 안에 있다. 당신들은 이스라엘에 있지 않기에 판단을 할 권리가 있다! 바로justement 여기서 나는 당신들과 우리 사이의 구분, 적어도 한 번, 이 구분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같은 글에서 핀켈트라우트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과 팔레스틴과 그리고 다른 곳애서 필요한 정치적 교훈을 주는 것을 인용한다: "사람이 땅보다 더 성스럽다. 비록 이 땅이 성스러운 땅이라고 할지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 대한 방어/보호, 그 앞에서 성스러운 땅은, 그것의 벌거벗음으로, 돌과 나무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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