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을 선정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벌써 9월입니다. 몇달 전부터 이달의 책 선정에 대해 블랑쇼나 데리다, 레비나스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간 김에 그들의 책들 중에서 번역된 것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블랑쇼의 책 중에서는 <무위의 공동체>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고원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한 적이 있더군요. 레비나스의 책 중에서는 새로 나온 번역 <존재와 다르게>를 구입해서 앞부분을 읽어보았는데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읽을 수 없는 책을 이달의 책으로 선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데리다의 책들 중에 이 번에 한국에서 꼭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번역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책입니다. 이 책을 제가 처음 읽은 것은 1995년입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책(1967년 출간)입니다. 이미 이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되는 책일 것입니다. 데리다의 책 중에서 데리다가 아마도 가장 깊은 애착을 가지는 책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책 안에서 그의 들리는 스승의 목소리 뒤에서 들리지 않는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으니깐요. 그리고 그가 후설로부터 배운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 책 안에는 또 다른 스승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것은 레비나스의 목소리입니다. 그 또한 데리다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Jacques Derrida, La voix et le phénomène, 1967(2009, PUF, coll. Quadrige)
신간도 아닌 이미 번역된지 오래된 책(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을 읽는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데리다의 저작 중에서 그의 모든 사상의 맹아가 간직된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이 책을 선정하기에는 그 이유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리다가 항상 그의 글쓰기의 기원으로 불러오는 사람이 후설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현상학자로서의 데리다의 모습을 읽고자 한다면, 그의 후설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데리다를 읽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령론, 그의 흔적이론, 그의 정의론, 그의 정신분석, 그의 언어철학, 의미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당위의 이유들은 다 뒤로 놓고 다만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어도 무관합니다. 한 영혼의 울림을 느낄수 있다면 말입니다.
▷데리다, <목소리와 현상>(김상록 옮김, 인간사랑, 2006)
이 책의 역사에 대해서 몇마디 하면, 1967년은 철학사에서 기억될 만한 연도입니다. 이 해는 철학사에서 우리가 "탈구축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철학의 고유명이 전세계에 각인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미 1962년부터 데리다는 여러 철학 잡지에 글들을 계속 발표하면서 그의 이름과 그의 사상이 알려왔지만 이 해에는 <목소리와 현상>(PUF, 117쪽), <그라마톨로지>(Seuil, 445쪽) 그리고 <글쓰기와 차이>(Editions de Minuit, 439쪽)가 한 번에 출간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책 중에서 <목소리와 현상>은 가장 짧은 책입니다. 페이지수로만 보면 이 책은 우선 읽기에 그렇게 무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일단 펼치면 이 책은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있습니다. 20세기를 현상학이 그 철학의 문을 열었다면, 그 이후의 철학이 말해지는 장은 이 현상학으로부터일 것입니다. 특히 후설의 <논리연구 1>이 세계에 던진 충격을 기억한다면, 데리다가 다시 이 글을 시작으로 서양철학을 탈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을 싶은, 혹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의 독서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데리다가 이 책에 "머리인용문"으로 놓는 세 인용문을 가지고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인용문은 2개는 후설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유명한 인용문입니다. 그것이 유명한 이유는 그 구절은 여러 사람들 - 아르토, 장 쥬네, 카프카, 라캉 등등 - 이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드가 포우의 것입니다. 작가의 인용문을 글의 머리에 놓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인용문은 글 한 가운데에서 길게 다시 말해집니다. 그것들을 본문 안에서 찾는 것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을 것입니다. 하나는 "자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재현/표상"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읽기의 제안은 데리다의 또 다른 글쓰기의 기원인 프로이트에 대한 글과 함께 읽는 것입니다. 그것은 <글쓰기와 차이> 안에 실려있는 프로이트에 대한 글, "프로이트와 글쓰기의 장場/ 장면場面"( Freud et la scène de l'écriture,1966년 발표)입니다. 이 두 글에서 데리다는 후설에 대해서 말하면서 프로이트에게 말을 건네고, 프로이트에 대해서 말하면서 후설에게 말을 건넵니다. 예를 들어 <목소리와 현상>의 "표현"에 해당되는 것은 프로이트의 "꿈"의 개념입니다. 프로이트에 대한 데리다의 읽기는 결국 라캉에 대한 데리다의 읽기에 곧장 이어집니다. 관심있는 사람은 라캉과 더불어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또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과 이 책을 같이 읽어도 좋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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