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쇼

블랑쇼, 나의 죽음의 순간

aurorepark 2010. 4. 16. 03:55

                                               Edward HOPPER, "Rooms by the Sea", 1951

 

 

 

나는 죽음 그 자체에 의해 - 어쩌면 부정의의 실수에 의해서 죽는 것을 방해받은 한 젊은 남자 - 아직 젊은 한 남자 - 를 기억한다.

 

연합군은 프랑스 땅에 발을 들여 놓는 데 성공했다. 이 패배한 독일군은 헛되이 무용한 잔인성으로 저항했다.

 

한 큰 집(성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의 문을 누군가, 주저하면서, 두드린다. 나는 그 젊은 남자가 분명히 도움을 청하는 누군가에게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안다. 

 

이 번에는, 한 지름: "모두 밖으로" 

 

한 나지 장교가, 부끄러울 정도로 정상적인 불어로, 우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이어서 두 젊은 여자를 내 보냈다.

 

"밖으로, 밖으로". 이 번에는,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 젊은 남자는 그럼에도 도망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거의 신부가 걷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장교는 그를 밀어붙이고, 그에게 총알집과 총알을 보여주었다. 분명히 싸움이 있었다. 그 땅은 전쟁의 땅이었다.

 

장교는 이상한 언어 안에서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 남자, 이미 덜 젊은 (우리는 빨리 늙는다) 그 남자의 코 밑에 총알집과 총알 그리고 수류탄을 내밀었다.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했다:"이것이 당신에게 이를 것들이다."

 

나지는, 규칙을 따라서, 인간 과녁에 이르기 위해 장병들을 정렬시켰다. 젊은 남자는 말한다: "적어도 나의 가족을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요".  고모(94세), 그녀 보다 조금 젊은 그의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시누이, 길고 느린 침묵의 행렬이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이미 끝난듯이.

 

나는 - 나는 그것을 아는가 - 독일군들이 이미 겨냥하고 있었던, 다만 최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가 그 때 이상한 믿을 수 없는 가벼움, 일종의 축복(그런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 지상 최고의 가벼움  - 을 체험했다는 것을 안다? 죽음과의 만남, 죽음과의?

 

그를 대신해서, 나는 이 가벼움의 감정을 분석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갑자기, 어쩌면, 정복할 수 없는 것이(되)었다. 죽음 - 불멸. 아마도 엑스타즈. 아마도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공감, 더 이상 불멸도 영원도 없다는 행복. 이로부터 은밀한 우정에 의해 그는 죽음과 연결되었다.

 

이 순간에,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전쟁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계는 갑자기 다시 돌아왔다. 레지스탕스의 동료들은 위험에 처한 그들의 한 동료를 구하려고 했다. 장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멀어졌다. 독일군들은 시간이 정지한 부동에 머물듯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중의 하나가 다가와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독일군이 아니라 러시아군들이다" 그리고 일종의 웃음과 함께 "블리소프 군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젊은 남자에게 사라지라고 신호했다.

 

나는 그가 멀어졌다고 믿었다. 여전히 가벼움의 감정 안에서, 그가 먼 숲에서, "부리에르의 숲"이라고 불리는 숲에 도달할 때까지, 거기서 그는 그가 잘 아는 이 나무들 가운데 숨어 있었다. 이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서 갑자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사방이 불바다였다. 화재가 계속되었다. 모든 농가가 불타고 있었다. 조금 후에 그는 3명의 젊은이, 농부의 아들들이, 이 전쟁과 전혀 상관이 없는. 그들이 그들의 젊음으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플어 오른 말들도, 밭들도 모두 끔찍한 전쟁을 인증했다.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장교가 돌아왔을 때, 성의 젊은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다. 왜 그 화, 그 노여움이 성(굳건한 존엄한 성)을 불태우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것은 성이었기 때문이다. 성의 정면에 파괴되어질 수 없는 기억처럼 1807년이라는 날짜가 적혀있었다. 그는 그 해가 예나의 시대라는 것을, 나폴레옹이, 그의 작은 회색 말을 타고, 헤겔의 창가를 지나갔을 때, 그에게서 "세계의 영혼"을 인지했다고 한 친구에게 말한 그 해였다는 것을 알 만큼 교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과 진리. 마치 헤겔이 그의 다른 친구에게, 프랑스군들은 그의 거주지를 부수고 도독질을 했다고 쓴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헤겔은 본질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 이 해, 1944년, 그 나지 장교는 농가들이 불러일으키지 않는 성에 대한 존중과 고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온 성안을 다 뒤졌다. 그들은 얼마의 귀금속을 가져갔으며, 다른 방들과 분리되어 있는 "윗 방"에서 장교는 두툼한 원고 - 아마도 전쟁의 기록들을 포함하는 - 를 발견했고, 성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불태웠다. 성주들은 살아남았다.

 

분명히 그 때 젊은이에게 부정의의 고문은 시작되었다. 엑스타즈 이상의 것; 그는 러시아 군인들의 눈에 조차, 그가 귀족에 속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는 살아남았다는 감정.

 

그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이들, 저들을 대신하는 삶, 살해의 잔인성.

 

그런데 총살이 단지 기다림 안에 있던 순간에. 내가 번역할 수 없는 가벼움의 감정만이 머물었다: 삶으로부터 해방된? 열리는 무한? 행복도 불행도 아닌. 두려움의 부재도 아닌, 어쩌면 이미 저-너머로의 발걸음. 나는 이 분석할 수 없는 감정이 그에게 실존으로 머무는 것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고 상상한다. 마치 그의 밖에 죽음이 단지 그의 안의 죽음에 부딪치듯이. "나는 살아 있다. 아니, 너는 죽었다."

 

오랜 후에 파리로 돌아온 그는 말로를 만났다. 말로는 그에게 그가 포로로 잡혀있었으며,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그 와중에 모든 원고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반성들이었을 뿐으로, 다시 쉽게 재구성할 수 있는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폴안과 함께 그는 헛된 되찾기를 시도했다.

 

뭐가 중요하겠는가. 죽음 그 자체인 가벼움의 감정만이 머문다.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후로 나의 죽음의 순간은 항상 진행 중인 것으로 머물렀다.

 

끝.

 

위의 글은 모리스 블랑쇼의 <나의 죽음의 순간,  L'instant de ma mort>의 완역이다. 이 짧은 이야기는 1994년 처음 출간되고, 2002년 재판이 나왔다. 


 

 

* 위의 그림은 인터넷에서, 내가 자주 들르는 한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이것을 보는 순간, 오래 이 곳에, 아주 오래, 인간이 머물 수 없는 이 곳에, 오래 이 곳에 머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