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말할 사람(3)
zur Blindheit überㅡ
redete Augen
(Tübingen Jänner)
Augen weitblind,
Augen im Sterbegeklüft,
Augen Augen:
(Schneebett)
따라서 봄은 (아마도) 항상 운동과,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 마치 봐야 할 것 너머를 보는 눈들의 부름으로 향하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 세계에 눈먼 눈들, 말은 눈들이 멀 정도로 세계에 잠기고, 눈들은 일련의 죽어김의 균열 안에서 바라본다 (아니면 그 안에 자신들의 자리를 가진다).
세계에 눈먼 눈,
죽음의 틈들 속에 눈들
눈들 눈들
더 이상 읽지 마라 ㅡ 보라 !
더 이상 보자 마라 ㅡ 가라 !
목적 없는 운동. 항상 지난 시간
Geh, dein Stunde
hat keine Schwestern, du bistㅡ
bist zuhause.
(Strette)
가라, 너의 시간에는
어떤 여동생도 없다, 너는 ㅡ
너는 여기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중단되지 않는 운동 : 돌아옴의 확인이 다만 그를 더 메마르게 할 뿐, 제자리에서 도는 느린 바퀴의 운동, 검은 벌판 위로 빛줄기, 아마도 밤, 별들의 밤의 바퀴, 그러나
Die Nacht
braucht keine Sterne,
(Strette)
밤은
어떤 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p. 76-77)
ㅡ zur Blindheit überㅡ
redete Augen
이 시구는 첼란의 <뒤빙겐의 1월>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이 시에 대한 여러 불어 번역들이 존재한다. 위에서 블랑쇼는 "세계에 눈먼 눈들, 말이 침수시킨, 눈이 멀 정도로 침수시킨 눈 yeux aveuglés au monde, yeux que la parole submerge jusqu'à cécité"이라고 옮긴다. Matine Broda는 "말들 속에 잠진 눈들 / 눈먼 Des yeux sous les paroles / aveuglés"이라고 옮긴다. 그리고 라쿠 라바르트는 <경험으로서의 시>에서 "Sous un flot d'éloquence / aveuglés, les yeux 유창함의 물결 속에서 / 눈먼, 눈들"이라고 옮긴다. 마음에 닿는다. 튜빙겐, 휠더린의 고향, 여기서 물결은 휠더린이 노래한 강, 강들, 물결과 같은 휠더린의 시, 이로부터 라쿠 라바르트의 '유창함의 물결 속에서'라고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