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
랑시에르. 어림셈
aurorepark
2018. 8. 8. 00:57
만나서 즐거운 문장을 하나 옮긴다. 랑시에르의 것.
"이것은 어림잡아 말하는 한 방식이다. 어림셈은 말하는 존재의 시학적인 조건과, 예술의 작업과 연관된다. 이것은 예술을 절대화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좋은 이유다."(랑시에르 대담집, <피곤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 527쪽)
그의 철학을 근사치의 철학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정확한 값이 없는, 헐렁한 여름 옷 같은
이러한 방식의 그의 글쓰기는 그가 즐겨 인용하는 릴케의 한 문장을 상기시킨다.
"상실도 우리에 속한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문학을 읽는 자신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그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쓰면서 의식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무의적으로 그가 사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과 글이 엮는 텍스트는 그 텍스트가 잊히고 옮겨지고 변경될 때에만 작동한다."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상실한다. 그 상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대로 우리 삶 그 자체, 사물들 그 자체에 소중한 어떤 것이다. 삐꺽거리는 마루의 마모처럼 말이다. 늙어감도 이런 마모 가운데 하나, 눈에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상실일 것이다.
그것이 글인 경우, 작품은 항상 그 작품의 상실, 부재에 의해서, 랑시에르가 말하듯, 잊혀지고, 옮겨지고 변경되면서만 작동한다. 다시 말해 사물들의 틈새를 열면서만 그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