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 (대담), "말들의 역사, 역사의 말들"
<역사의 이름들Les noms de l'histoire> 출간 후, 잡지 Communications (n° 58)에 실린 대담, "말들의 역사, 역사의 말들Histoire des mots, mots de l'histoire"에 대한 선택적 번역이다. http://www.persee.fr/web/revues/home/prescript/article/comm_0588-8018_1994_num_58_1_1882
ㅡ 언제, 정확히 어떤 계기로 '역사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그것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는가?
랑시에르: 두 계기에서 그 질문이 나에게 제기되었다. 하나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제기되었다. 내가 <플롤레타리아의 밤>을 쓸 때였다. 처음에 나는 노동자들의 말들을 어떤 존재 양태 혹은 어떤 문화로 환원할 수 있는 지성체(*intelligibilité, 그들의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하는 선험적 이해가능성의 체계)의 한 유형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유형적 설명은 문제가 되는 실재를 설명하기보다는 노동자의 말들과 그 표현들을 '노동자라는 집단적인 신체' 안에 가두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런 유형의 진리를 포기했다. 이때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나는 한 유형의 이야기 형식을 취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사실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기술 양식을 여기에 적용할 수 없었다. 나는 한 장소에서 한 신체를 끌어내는, 또 이 신체에서 한 목소리를 끌어내는 유형의 이야기의 형식을 취할 수 없었다. 우리가 보통 사실적이라고 부르는 이 이야기 양식은 화자들을 '그들의' 세계 안에 고정시키면서 화자들이 이야기의 장scène 안에서 한 자리를 가지는 것을 '허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체성, 즉 신체와 말 사이의 일정한 관계를 부수는 불법적인 담론의 망의 형성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결국 말의 세계에 말의 공백과 말의 불법성을 돌려주기 위해, 또한 이 경험들에 그것에 고유한 애매성과 비규정성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르게 기술해야 했다. 결국 나는 위고나 졸라의 방식으로는 이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유형의 이야기 방식을 채택해야 했다. 컽으로 보기에는 민중이 말하게 하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은 듯이 보이는 다른 모델, 예를 들러 프루스트, 울프 등을 채택해야 했다. 다시 말해 이 말들에 우선 자리를 정해주고, 그 뿌리를 발견하는 이야기의 양식에서가 아니라, 단편적이고 공백을 가지고, 결정불가능하고,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 결정적인 그 말들의 성격으로부터 출발하기로 선택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의 유형 안에는 목소들이 점진적으로 서로 얽히면서 점차적으로 실질적인 공간을 형성해가는 것들이 있다. 문제는 어떻게 목소리에 의해 산출된 신체가 아니라, 목소리가 점진적으로 일종의 집단적인 공간을 그리는지를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플롤레타리아의 밤>은 담론의 질서가 사회적 질서 안에 자리를 정해주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다른이들(부르주와, 지식인, 시인들)의 언어를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었던 방식détourner을 연구했다. 그들의 전복의 방식은 노동자의 존재 방식이라고 전제되는 말의 거부에 의해서였다. 이로부터 나는 담론의 나눔과 사회적 나눔 사이의 관계를 더 일반적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어떻게 철학은 장인들의 활동의 의미를 그 존재에 적합한 자리를 부여하는 방식에 의해서 개념화하는가; 어떻게 사회적 역사 혹은 사회학은 적절한 학의 대상을 대중적 정체성에 고유한 존재 양태와 행동 방식 혹은 말하는 방식 사이의 관계의 표상과 연결하는가; 어떻게 이것은 지식들 사이의 나눔에서 반영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지식들 사이의 나눔이 사회적 나눔 안에 개입하는가. 특히 나는 이런 나눔들이 문제화 되는 담론적 장소들과 그 계기들에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철학, 혹은 학이 학의 지위 혹은 사유의 지위를 사회적 나눔들의 지위의 질문과 연결하기 위해 이야기의 양식을 요청하는, 또 진리가 허구의 양태 위에서 말해져야 하는 그런 장소들과 계기들에 관심을 가졌다.
ㅡ 이런 담론의 계기들을 당신은 역사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철학적인 영역에서도 발견했는가?
랑시에르: 이야기, 텍스트에 대한 질문은 우선 플라톤에 의해 제기되었다. 특히 이 철학자는 나의 관심을 끄는데, 그는 진정으로 글쓰기의 장치를 발견했다. 플라톤은 글쓰기에 유죄를 선고하면서, 동시에 여러 종류의 글쓰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제시했다: 시인들의 글쓰기, 그리고 이 시인들의 글쓰기와 전통을 비판하는 역사가와 철학자의 글쓰기 등등. 이 글쓰기의 장치 안에는 논증에서 이야기로 이행하는 특수한 형식들이 존재한다. 이 이행은 사유의 두 계기에서 일어난다. 우선, 사유와 진리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때이다. 왜냐하면 담론이 구성할 수 있는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결국 진리의 이질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철학적 담론이 진리와 관계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담론이 자신에게 이질적일 때뿐이기 때문이다. <파이드로스>에서 날개 달린 수레를 끄는 영혼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에, 플라톤은 어떤 시인도 노래한 적이 없는, 노래할 수도 없는 진리의 장소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말할 때 바로 그 순간은 진리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리에 대해서 말하면서 진리를 말하기" 위해 그는 이야기를 끌어들인다(*Phèdre 247:c'est ici qu'il faut avoir le courage de dire vrai quand on parle de la vérité. 바로 이 순간은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말할 때 진리를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하는 순간이다). 논증에서 이야기로의 이행의 두 번째 계기는 사유의 나눔이 사회적 나눔과 연관되는 순간이다. 나는 여기서 정치적 분할의 형식과 영혼이 사유와 담론에 불평등하게 참여하는 형식을 관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신화들"을 떠올린다. 이 신화들에 의하면 일단의 사람들에게는 법조인의 기능을 다른이에게는 전사의 잠재력을, 그리고 그 나머지에게는 장인의 지위를 부여한다.
ㅡ 당신의 책, <역사의 이름들>의 부제로 '지식의 시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이 "시학poétique"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이고, 이것은 수사학이나 미학과 대립되는가?
랑시에르: 내가 "시학"에 대해서 말할 때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또 그리스적 의미의 범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아직도 여전히 기능하는 범주이기도 하다.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뮈토스muthos"라고 부르는 것이 구성하는 행위의 양태를 개념화 한 것이다. "지식의 시학*"이라는 부제는 지식의 발화적 구성과 이 구성을 질문하는 담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내가 "미학esthétique"이라고 부르는 것은 aisthesis 즉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방식une manière d'être affecté, 발현l'acte, 표상, 감각적인 것 안에 거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요약하면 "미학"이 수용의 수동적인 측면을 의미한다면 "시학"은 능동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지식의 시학"에 대해서 랑시에르는 <역사의 이름들>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une étude
de l'ensemble des procédures littéraires par lesquelles un discours se
soustrait à la littérature, se donne un statut de science et le signifie"(p. 21) 즉 지식의 시학은 "일련의 문학적 절차에 대한 연구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 문학적 절차에 의해 한 담론이 문학에서 벗어나 과학의 지위를 갖게되고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일반적인 정의를 따르면, 역사는 문학적인 수단을 통해 문학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아래서 보게 되겠지만 하나의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즉 인간이 문학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바로 이 조건에 의해 역사는 가능하고 동시에 불가능하다.
ㅡ 결국 시학과 달리 수사학은 사유와 연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랑시에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시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담론에 고유한 지향이다. 브로델이 역사적 이야기를 예를 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 안에서 이야기의 기능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여기서 우리는 과학이 자신의 말에 진리를 스스로 부여하는 방식을 접한다. 이것은 장식의 기능으로서의 수사학보다 더 멀리간다. 전통적으로 수사학을 말을 관중에로 이끄는 방식을 다룬다. 반면 시학은 효과의 측면이 아닌 진리와 관계한다.
ㅡ 몇몇 사학자들은 "덱스트와 텍스트의 해체의 사악한 지배" 혹은 "실재와 상상적인 것의 구분불가능성"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다. 어떤 이유에서 그들은 텍스트와 텍스트 분석에 우려를 표하는가?
랑시에르: ...역사 분과에서 우려를 표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상상적인 것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문학에 대한, 비-과학에 대한 우려이다. 인문학은 그 자체 문제적인 학이고, 항상 그것이 과학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고, 항상 과학으로서의 권위를 합법화하는 것이 힘든 학이다. 여러 종류의 인문학 중에서 특히 역사는 그 합법성에 있어서 가장 의심받는 것이다. 역사는 항상 자신이 과학이라는 것을 증명해야하고, 재증명해해야 한다. 따라서 역사적 이야기의 구성 안에서 문학적인 절차로서 그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 이것은 다만 제 일단계에 해당된다. 역사는 말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굴러간다. 역사는 자신의 언어 안에서 논증하는 담론을 형성한다. 역사는 언어 안에서 그것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과학이라는 것을 논증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역사는 그 대상으로 말하는 존재와 관계한다. 이 대상은 무엇인가? 말의 사건들은 무엇인가? 말하는 존재의 존재 방식은 그 방식 자체에 의해 과학의 대상이어야 하는 것의 부정이 아닌가? 어떻게 자신의 대상에 의해서 반박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 역사가는 자신의 대상, 즉 말하는 존재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이 대상은 과학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고 비-과학과 연루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마지막 불안은 그가 시간, 죽음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그의 대상은 그를 죽음으로 보낸다.
ㅡ 당신은 "말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당신은 "역사가 불가능하고 동시에 가능한 것은 인간이 문학적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진술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랑시에르: 인간이 정치적 동물인 것은 인간이 문학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말과 문자의 여정에 잡혀있고, 여기서 인간은 단어들과 문장을 통해 개별적인 혹은 집단적인 사건들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문학에 대해서 말할 때는 낭만주의 시대의 이념으로서의 문학을 말한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전통적인 시학과 관계하지 않고, 예술이 언어의 공통된 잠재력에 속하는 시기를 말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는 이 공통의 잠재력, 일종의 중성적인 이 문학의 공통의 잠재력을 사용할 수 있다.
ㅡ 문학의 새로운 정의는 역사적 이야기의 새로운 정의와 동시적이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도래를 지시한다. 이 세가지 사건을 낳은 것은 같은 과정인가?
랑시에르: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과학이 한 과학의 이념에서 구성되는 시기는 또한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특히 인간이 문학적 동물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정치적 동물은 문학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는 정치적 체계가 도래하는 시기였다. 역사과학이 구성되는 시기는 문학이 우리가 소위 "Belles Lettres"라고 부르는 것과 결별하면서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공존은 동시에 갈등의 시기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지배적인 체계들paradigmes 중의 하나인 사회과학적 체계를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민주주의에 반해서 반동적으로 창출되었다. 사회적 체corps가 불법적인 말의 유통에 의해 분산되었다는 확신 속에서 이 체계는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개인과 집단의 단일성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사회적 바탕을 다시 생각하는 데에서 구성된다. 집단성, 믿음에 대한 뒤르켕의 체계들은 그것들이 지닌 갈등적인 성격들을 잊고 지속적으로 정신사의 역사로 작동해 왔다. 민주적 시대의 역사는 과학의 이념에 의해, 다시 말해 도식적으로 반민주적인 과학의 이념에 의해 바리케이트가 쳐졌다. 이런 역설로부터 대중의 시대의 역사과학이고자 하던 역사학은 자신의 학의 대상을 왕들과 사제들에서 찾았다. 이런 "사회학적" 체계는 한 번도 민주적 시대의 진정한 역사를 만든 적이 없다.
ㅡ 당신의 책 안에서 사용하는 "intrigue"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예를 들어 폴 벤느Paul Veyne가 사용하는 의미에서 사용하는가?
랑시에르: 나는 "intrigue"라는 말을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사용한다. l'intrigue는 이야기, 행위의 배치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대상을 행위들의 배치를 통해서 정돈한다. 이것은 폴 벤느가 말하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그의 것과 같지 않다. 폴 벤느는 사건에 한 지위를 부여하는 데에 있어서 여러 입장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그에게서 사건은, "사건의 장"을 예로 들어서 말할 때에는 객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역사가들에게 동일한 사건의 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사건의 장으로부터 출발해서 역사가가 구성하는 플롯intrigue이 있게된다. 이것은 나의 입장과 다른 것인데, 나는 이런 역사의 장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사실들과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다고 말하는 플롯의 양태들이 있을 뿐이다. 결국 플롯이 사건을 사건으로 구성한다.
ㅡ 당신은 자주 개인들의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말하는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말해지지 않은 것les non-dits, 쓰여진 것, 이해된 것의 무게이며, 말들은 사실보다 더 고집스럽다"고 말한다. 또 다른 곳에서 "역사의 고유한 방식은 말의 사건이며, 말의 여정trajet에 따라서 말하는 존재는 그들의 말에 진리에 헌신한다." 고 말한다. 당신은 여기서 말의 정합성 혹은 말의 도달점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랑시에르: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말들의 역사, 의미있는 일련의 장면들의 역사, 말들이 신체들 간에 질서를 놓는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는 역사가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더 무겁고 더 고집스럽다는 것이다. 역사가들과 나는 장인들의 문화와 19세기의 노동자들의 상징적 표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몇몇 논쟁들을 했다. 그때 몇몇 역사가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다소 헛되이 항상 논쟁의 중심이었던 노동자들이 체화하고 있는 어떤 사회적인 고정된 특징corporation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재화공"이라는 이름은 낙인찍힌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그리스의 Esope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떻게 신성이 다양한 체화와 다양한 활동에까지 그 특질(진리와 거짓말)을 나누는지를 이야기한다. 재화공에 이르러서 그에게 분배되는 것은 거짓말뿐이었다. 재화공의 주제는 플라톤과 화가 아펠에서도 나타난다(*한 기록에 의하면 아펠은 그의 그림을 보고 한 재화공이 비판하고자 하자마자, 아펠은 그에게 "Nu sutor ultra crepidam, 즉 재화공은 신발 너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그 이후 누군가 자신의 영역 밖에 것에 대해서는 알고자 하고 판단하고자 할 때 말해지는 말이 되었다). 동업조합 안에서 재화공은 저주받은 존재로 간주되었으며, 그 외에도 재화공과 유태인을 연결하는 많은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사회질서 안의 한 자리는 담론의 질서에 의해 존재하는 지시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다른 직업에 비해 제대로 구조화되지 않고, 불안정한 이 직업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낙인은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상황과 연관될 것이다. 명명화nomination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연루시키며, 이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지정assignation이다.
ㅡ 당신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는 연속적이기보다 단절적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랑시에르: 그렇다. 실질적으로 역사를 만드는 것은 균열들les lignes de fractures이다. 민주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기존 질서와의 관계에서 공동체 안에 균열들이다. 내 생각에는 두 종류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하나는 조직적이고 기능적인 양태에서 사유된 사회로 존재, 행위, 말의 동일성 위에 설립된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말하는 존재들의 단순한 평등과 그들의 모임의 우연성 위에 설립된 공동체이다.
ㅡ 한 유형의 글쓰기는 한 유형의 공동체에 대등한다고 단순히 말할 수 있는가?
랑시에르: 물론 그렇지 않다. 공동체의 글쓰기 유형의 계보학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사실적인 낭만주의 시대의 글쓰기, 한 공동체의 파라디금에 대응하는 글쓰기 등등. 그런데 내가 하고자 한 것은 한 공동체의 다른 이념에 대응하는 다른 글쓰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