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기토

피에르 클라스트르, 코페르니쿠스와 원시인들(1)

aurorepark 2010. 9. 1. 16:38

<Copernic et les sauvages>, <코페르니쿠스와 원시인들>, 『국가에 반한 사회』La société contre l'Etat (1974) 의 첫 장((p. 7-24)을 차지하는 이 글은 1969년 잡지 Critique 에 실렸던 글이다.L'esprit des lois sauvages. Pierre Clastres ou une nouvelle anthropologie politique  원시인들의 법의 정신. 피에르 클라스트 혹은 새로운 정치적 인류학, (Seuil,1987), 이 책을 편집, 지도하기도 한 미겔 아벤수 Miguel Abensour는 그의 다른 책, 『비판적 정치 철학을 위하여』Pour une philosophie politique critique (sens & tonka, 2009) 에서 위의 논문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책, <국가에 반한 사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에 반한 사회의 저자, 피에를 클라스트르, 나에게, 그의 이름은 감동이다. 그의 논문, 크리틱에 1969년 실린 "코페르니쿠스와 원시인들"에서 그의 놀라운 강독에서 (위의 논문에서 클라스트르가 분석하는 책은, J. W. Lapierre의 <정치적 권력의 토대에 대한 에세이> Essai sur le fondement du pouvoir politique (Faculté d'Aix-en-Provence, 1968)이다. 역주) 내가 받은 지적인 감동은 감동 그 자체이다. 그 당시 진정한 정치에 대한 비판의 길을 모색하고 있던 나는 여기서, 비교할 수 없는 기술과 탁월성을 보여준 그의 이 글에서, 그 길을 발견했다. [...] 그가 열어 놓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가 행복하게 열어 놓은 그 표현들 안에서, 그와 더불어 우리는 국가 없는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국가 없는 정치는 국가에 반한 정치, 분리된 정치적 권력의 출현에 반한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국가의 탄생"은 하나의 사건, 단지 "잘못된 만남 malencontre"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회들 가운데에서 반복되도록 정해진 그러한 사건, 국가를 가진 사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 마치 두 형태의 국가 사이에 빈공간에 국가에 반한 정치학이 다시 솟아날 수 있는 가능성이,  물론 그 가능성이 지나가는 순간일지라도, 그 흔적을 다 지움이 없는, 그런 가능성이 제시되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푸코가 클라스트르의 탐구를 생각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1972)에서 현대의 위대한 민족학에 대한 책은 마르셀 모스의 <수여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라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이라고 말할 때, 그리고 그로부터 헤겔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 역사를 추진하는 모터를 그 안에서 생각했을 때, 그들은 부분적으로 클라스트르의 발견에서 그러한 비판적인 영감을 끌어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논쟁의 여지 없이,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새로운 정치적 인류학은 정치적인 것의 새로운 투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행한다. 특히, 그가 실천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 국가를 가진 사회를 국가가 없는 사회를 중심으로 돌게 만든 그 혁명 이외에, 그리고 국가에 반한 사회들의 "좋은 소식", 다시 말해 지배종속적인 아닌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사회라는 좋은 소식 이외에도, 클라스트르는 맑스의 이론의 보편성을 집어던진다. 여기서 그는 원시사회의 경우를 제시하면서 맑스의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논리적인 연관을 전복한다. 왜냐하면 석기시대의 혁명이 사회적인 하부구조에 변형을 가져왔다는 주장은 동일한 사회적인 몸체의 변형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원시 시회의 변형을 추진하던 모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측면, "정치적인 단절"을 살펴보아야 한다. "원시사회에서 진정한 혁명은 석기시대의 (경제적인) 혁명 (도구의 발명)이 아니라, ...정치적인 혁명이다. 그것은 원시사회에 대해서는 아주 신비스러운, 되돌릴 수 없는, 죽음과 같은, 우리가 국가라는 이름 하에서 인식하는 것의 출현이다."(『국가에 반한  사회』, p. 172) 이로부터 맑스의 제안을 전복할 수 있게된다. 정치적인 것을 하부구조 옆에, 경제적인 것을 상부구조 옆에 정돈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경제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에 의해서 규정하는 데 이른다. "정치적인 억압이 착취를 결정하고 부르고 가능하게 하지 않는가?"(위의 책, p. 173)  [...] "


지금 우리가 원시사회에 대해서 아는 것들은 이제 더 이상 경제의 수준에서 정치적인 것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계보학이 자리하는 것은 어쨌든 여기에서가 아니다."(174) 그렇다면, 어떤 토양에서 그것을 찾아야 하는가? 인구의 증가? 소유의 등장? 우리가 그의 글에서 합법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원시사회에 고유한 반-국가적인 장치, 국가에 반한 복잡한 투쟁의 장치는 갑자기 이 사회가 영원히 거부했던 것에, 인간의 국가에의 종속, 그것에 양보된다는 사실이다. 클라스트르가 평가하듯이, 만일 국가의 비-출현의 조건 - 권력이 없는 추장의 실존, 다만 형식적인 권위만을 부여받은 추장 - 을 명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반대로, 이 조건 하에서는, 국가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이미 국가 안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이 국가의 탄생을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라 보에티의 표현으로 그것이 "잘못된 만남"이든, 아도르노적 의미에서 "대립의 우연성"에서 이든, 현재로서는 국가의 탄생은 수수께끼로 남는다.


원시사회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견한다면? 이에 대한 반대는 즉각적이다. [...] 그런데 클라스트르의 시나리오를 따라가면, 상황은 전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의 출현이 원시사회에 종말을 가한 어떤 특수한 순간, 원시사회의 정치가 끝없이 회피하고자 한 것, 분리된 정치적 권력, 국가를 탄생시키는 특수한 순간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에 반한 사회에서 국가가 있는 사회로의 이행, 혹은 도약의 사건이다. [...] 두 종류의 사회의 분리를 표시하는 놀라운, 외 따로 떨어진 사건. 왜냐하면 이때 새로운 논리, 국가의 논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형성(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형식들)의 현전과 부재는 모든 사회에 적용된다. 그것은 사회들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불연속의 선을 그린다."(170)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원시적인 정치, 그것의 종말의 사건이다. 클라스트르가 발견하는 다양한 정치의 모습들 이외에, 그는 원시사회 안에 원시적인 정치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고전적인 인류학적 정치학을 집어던진다. 이것은 정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국가가 없는 사회와 국가를 가진 사회라는 전통적인 구분을 클라스트르는 새로운 구분, 지배적인 권력의 사회와 비-지배적인 권력의 사회로 대체한다. 이로부터 그는 정치와 국가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차이를 밝힌다. 국가 없이도 정치는 가능하며, 국가는 자신의 권위를 상실한다. 국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치적인 삶의 완성인 것과 멀리 지엽적인, 특수한 지위로 전락한다.  


                                                                        *


코페르니쿠스와 원시인 (p.7-24)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는 항상 빈손으로 여행을 떠났었다고 말한다 : 나는, 그가 말하듯, 그는 거기에 자기를 동반했다고 믿는다."(몽떼뉴)


*[ ]는 본문의 쪽수를 지시한다.

*읽기의 편의를 위해 몇 번에 나눠 실른다.


우리는 진지하게 권력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가? 『선악을 넘어서』의 한 단편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시대에, 인간이 존재한 이래로, 인간 집단이 (가족, 공동체, 부족, 민족, 교회, 국가) 존재했다. 그리고 다수의 인간은 소수의 추장에게 복종한다. 결국 만일 복종이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큰 미덕이고, 가장 오랫동안 행해진 것이고 교육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들 각각의 규율 안에서 일종의 형식적인 의식으로서 복종의 내재된 욕구를 소유한다고 합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너는 따짐이 없이 이것을 하라; 따짐이 없이 이것을 하지마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라”.” 그의 아리러니에서 진실과 거짓에 대한 거의 아무런 걱정 없이, 아주 자주 그렇게 하는 것처럼, 니체는 자신의 방식으로 반성의 영역을 한 쪽으로 떼어내서 한계 지운다. 이 반성의 영역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변적인 사유가 전념하던 것으로 200년 이래로 과학적인 탐구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정치적인 영역의 중심에 권력의 질문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적 인류학에서 점점 더 많은 수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새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민족학은 아주 최근에서야[7] 고대사회의 정치적인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이것은 민족학의 우선적인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고대 사회에서 사실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권력을 문제화하면서 이 정치적인 영역을 드러낼 것이다: 권력은 일종의 자발적인 양태로, 우리의 문화에 내재하는, 따라서 아주 전통적인 것으로, 다른 문화들과 엮이는 정치적인 관계를 파악하게 하는 단서이다. 그런데 이 늦음은 따라잡힐 것이고 그 공백은 채워질 것이다; 그 이후로 정치적인 인류학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기 위한, 그리고 그 결과들을 측정할 수 있기 위한, 권력의 본성과 그것의 기원과, 그것이 실행되는 사회의 유형에 따라서 역사가 그것에 강요한 변형들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기 위한 충분한 텍스트와 기술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라피에르의 『정치적 권력의 토대에 대한 에세이』1는 이러한 요구에 대답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간 사회 뿐만 아니라, 일단의 사회적인 동물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으며, 이어서 철학자로서 저자는 “동물적 사회학” 그리고 민족학의 현대적 기술들에 의해 주어진 소여들을 반성한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권력의 문제가 있다: 라피에르는 우선 인간적 사실이 삶의 필연성에 대답하고 있는지, 그것이 생물학적인 기원으로부터 전개되는지, 다시 말해 권력이 자신의 탄생의 장소를 문화가 아닌 자연 안에서 발견하는지를 묻는다. 그런데 그의 긴 논의와 탐구를 통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동물들의 사회적 현상들과 특히 동물들의 자동교정의 과정으로부터 얻은 인식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우리에게 모든 형태의, 심지어 그 잠재적인 형태로서의 정치적인 권력의 전적인 부재를 드러냈다.”(222) 이로부터 작가는 “인간 사회의 정치적인 권력의 ‘고대적인’ 형태들” - 이 부분은 그의 탐구들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 질문하기 위해 문화학과 역사학으로 돌아선다.[8] 특히 원시인들에서 권력의 문제에 바쳐진 부분에서 반성은 창조적이 힘을 획득한다.


여기서 다뤄지는 사회들의 다양성은 아주 인상적이다. [...] 고대사회는 아주 서로 달라서 모든 원시인들은 모두 회색으로 만드는 우울한 반복과는 아주 다르다. 이 다양성의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이 사회들 간에 최소한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저자는 아프리카를 5개의 거대한 유형으로 나누는 영국의 인류학의 분류방식을 채택한다. “가장 정치적인 권력을 발전시킨 고대사회로부터 거의 정치적인 권력을 발견할 수 없는 고대사회로까지”(229) 따라서 우리는 원시사회를 정치적 권력의 “양”의 적고 많음에 따라서 정돈할 수 있게된다.


이 분류화의 원리 그 자체를 반성해 보자.[9] 그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어떤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적고 혹은 많은 “양”의 권력을 가진 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잠정적으로, 우리는 정치적인 권력에 의해서 무엇을 이해하는가?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한데, 여기서 권력을 가진 혹은 권력이 없는 사회를 분리하는 가정된 간격(intervalle) 안에 동시에 권력의 본질과 그것의 토대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세세한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집단을 전-정치적인 집단으로부터 분리하고, 인간 집단을 문명적인 사회로 변형하는 어떤 단절, 불연속, 혹은 극단적인 도약의 인상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의 기호를 가진 사회들과 -의 기호를 가진 사회들 사이의 이행은 점진적이고 연속적이며, 양적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사회들을 분류할 가능성 그 자체는 사라진다. 왜냐하면 두 극단 - 국가를 가진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 - 사이에 무한의 중간 항들이 발견될 것이고, 이 무한성은 각각의 특수한 사회에서 분류 체계를 형성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모든 분류화가, 고대 사회에 대한 인식이 세분화 됨에 따라서, 그들 간의 차이가 더 잘 드러남에 따라서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다. 결국, 이런 저런 경우에서, 권력이 없는 그리고 권력이 있는 것 사이의 불연속성 혹은 그 둘 사이의 연속성의 가설에서 어떤 사회의 경험적인 분류화는 정치적 권력의 본성도 그것의 발생의 상황도 밝힐 수 없는 것처럼 보이며, 수수께끼는 그것의 신비 안에서 지속되는 듯이 보인다.


“권력은 특정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완성된다: 명령과 복종”(44). 이러한 관계가 관찰되지 않는 사회는 권력이 없는 사회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우선 이 글에서 주목되는 것은 민족학의 탐구의 정신을 지배하는 한 개념의 전통주의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권력은 결정적으로 다만 강압적인 관계(coercition)에서만 주어진다는 확실성이다. 이 확실성은 한 번도 의심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 대해서 니체, 막스 베버(폭력의 합법적 사용의 독점으로서의 국가) 그리고 현대의 민족학 사이에는 생각보다 더 근접한 관계를 가지며,[10] 같은 토대로부터 나오는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진리, 권력의 존재는 폭력에 있으며, 우리는 권력의 술어, 즉 폭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오랫동안 서양을 지배하던 이 사유를 논의 없이 받아들인 민족학에만 그 잘못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고유한 영역, 고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관계, 즉 폭력을 발견할 수 없으면, 우리는 권력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1. J. M. Lapierre, Essai sur le fondement du pouvoir politique, Faculté d'Aix-en-Provence, 196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