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 믿음과 지식(7)
7. 종교의 이름으로, 여기서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au nom de 도래하고, 행해지고 혹은 말해지는 모든 것에서, 이 이름의 힘을 단순히 우연적인 것으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이든 간에 신정정치는, 우리가 제기하는 모든 질문들이 의존하는 개념들에서처럼, 다만 유럽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기독교적인, 즉 그리스-로마적인 민주주의, 세속화,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적 권리라는 이름에 의해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자리는 이름에 대한, "무엇의 이름으로 향해지는"모든 것에 대한 질문들에 의해 정해진다: "종교"라는 이름, 신이라는 이름들, 언어의 체계에 속한 고유명과 그렇지 않은 고유명에 대한 질문들, 그로부터 번역불가능성과, 또한 그것의 반복성 itérabilité (다시 말해, 반복가능성 répétabilité과 이념화 idéalisation그리고 이미 기술tékhnè와 기술과학과 원거리 순간이동의 기술과학과의 연계)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기도에서 그 고유명과 그것이 불려지는 수행성과의 연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기도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 마치 모든 주소 adresse에서, 모든 인증에서처럼, 그것의 수행성에서 고유명과 타자에 대한 믿음에 호소하는, 다시 말해 그것의 이름으로 맹세한 믿음이 전개되는 모든 형태와의 연계에 대한 질문들.
- 이름, 무엇인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 그것이 신의 이름이든, 아버지의 이름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이름은 대의, 이유 raison, 혹은 사물chose 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이다. 이름에 대한 반성은 고유명에 대한 반성으로, 그리고 그것의 번역 가능성과 그것의 불가능성으로, 그리고 전달과 그것의 수행성, 그리고 그것의 도달의 문제, 주소와 주소의 상실에 대해서, 그로부터 데리다의 지속적인 주제인 반복성 itérablité과 이념화 idéalisation가 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