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비판의 근본적인 질문
나는 앞선 글에서 칸트의 초월론적인 문제는 대상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 질문의 근원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왜냐하면 한 철학자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그 철학자의 근본적인 문제 의식이 무엇이었는지 - 그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자신의 이름과 삶을 걸 만큼 문제가 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 우선 파악하는 것이 읽기의 순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무수한 주장들 틈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1770년 『철학논문 Dissertation』과 1781년 『순수이성 비판』 사이에는 11년의 공백이 존재한다. 이 긴 침묵의 시간 가운데 우리는 다행히도 <마쿠스 헤르쯔에게 전달된 한 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편지는 칸트 사상의 한 전회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순수이성 비판의 기획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전해준다.
칸트의 비판의 유일한 동기를 형성하는 이 대상에 대한 질문은, 결국 본래적으로 현상학적인, 소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어떻게 소여가 주어지는가? 다시 말해 <대상>이라는 말의 독일어 Gegen-stand (ce qui est en face, 대면하고 있는 것, 내 앞에 서 있는 것)가 지시하듯이, 한 대상이 <대면 en face>의 형태로 주어진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의식에 주어지는 것, 즉 의식에 나타나는 것의 존재의 문제이다. 대상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대상의 대상성, 대상의 존재, 다시 말해 대상의 초월성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위의 질문 자체에서 우리는 우선 이전까지 사용되던 <대상>이라는 용어의 사용(특히 라이프니찌의 개념)을 전복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우리는 사물들과 그에 대한 의식인 표상들을 모두 대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현상과의 관계에서, 이 말이 표상으로서의 대상이 아닌, 한 대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연구가 요구된다." (『순수 이성 비판』, A 189-190/B 234-235)
마쿠스 헤르쯔에게 보낸 편지를 더 읽어보자.
"1770년 글에서 나는, 마치 사물들이 les choses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지성적인 것이 les intellectuelles 존재하는 것처럼, 감각적인 표상들이 사물들을 표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물들이 우리를 촉발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사물들은 무엇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그리고 지성적인 표상들이 우리의 내적 활동에 의지한다면, 이 표상들과 이 표상에 의해 산출된 것이 아닌 대상들과 가지는 일치는 어디서부터 유래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수이성이 대상에 가지고 있는 공리들은 경험에 의존함이 없이 어디서부터 이 대상들과 일치를 가져올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의 대답들을 가진다: 신 안에서, 혹은 인간의 그 안에 참여에 의해서, 혹은 상기에 의해서, 혹은 신의 진정성에 의해서, 혹은 이미 정해진 조화에 의해서 등등. 철학의 오랜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인 정신과 사물 혹은 사유와 존재, 혹은 말과 사물과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의 대답에 대한 이 글에서의 칸트의 비판의 의도는 혹은 이 글에서 그가 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또 다른 유사 대답의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신에게 또는 그와 유사한 것에 대답을 전가하고 나면 가려지는 진정한 철학적인 질문이다. 그 질문은 초월론적인 철학의 설립을 위한, 지금까지 사유 안에서 사유되지 않고 남아 있던 새로운 철학의 영역을 열어 보이는 그런 것이다.
칸트가 마쿠스 헤르쯔에게 전달한 그의 철학적인 질문은 그 당시, 마쿠스에게 그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 그 자체의 한 예였다. 실재와 사유의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그 철학적인 과제로 가지는 이 칸트의 질문의 어려움의 근원은 우선 표상과 대상과의 관계가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이 관계가 표상의 언어 안에서 말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칸트보다 쉽게 이 질문에 접근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후설 이후에 우리는 <지각 perception>의 언어들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에 비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사물 Ding과 초월론적인 대상 Gegenstand의 구분 혹은 대립은 대상은 사물의 한 변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이로부터 대상에 대한 질문은 <대상 일반 Gegenstände überhauft/Objet en général>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말해, <대상의 대상성 Gegenständlichkeit>에 대한 질문으로,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대상에 대면한 유한하고 감성적인 인간의 대상에의 접근의 문제, 즉 촉발 l'affection의 지배 하에 작동하는 인간의 인식의 <대면성 l'en face/Gegen-stand>의 탐구로 이어진다.
칸트에서 주체의 문제는 주체에 대한 질문 (주체란 무엇인가?)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탐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결과였다. 이 결과로부터 칸트는 비로소 주체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질 수 있는 자리에 있게된다. 현대 철학에서의 주체의 문제, 초월성의 문제의 모든 기원은 칸트의 이 대상에 대한, 결국 타자에 대한 질문에 그 근원을 가진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 던지는 물음은 악무한의 순환 속에서 회전할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대면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에 대한 탐구로부터, 나는 나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할 것이다. 종종, 잘못 던져진 질문은 공허한 제자리 돌기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